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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n 26. 2024

그 많던 체육부장은 어디로 갔을까?

[울림의 몸 이야기]

그러나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이고, 어디엔가 있다는 공 차는 그녀들이 내 주변에는 아직 없다. 

중학교는 공학이었지만 남녀 각반이었고 고등학교는 여고를 다녔다. 6년 내내 반마다 반장, 부반장이 있듯이 체육부장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씩 체육부장을 맡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그 체육부장들은 운동 신경이 매우 뛰어났다. 달리기도 빠르고 피구도 잘하고 배구도, 농구도, 발야구도 잘했다. 반 대항 경기를 할 때는 전략도 잘 짰고 체육 대회 때 계주 순서를 정하는 것도 체육부장의 몫이었다. 주전자에 물을 가득 받아 발야구나 피구 경기 코트를 뚝딱 그려내기도 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특출나지는 않아서 체육부장을 동경하고 선망했다. 반 대항 피구나 배구 경기에 나갈 선수를 고를 때 체육부장이 나를 몇 번째로 부를지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철봉이나 멀리뛰기처럼 내가 잘하는 운동을 배울 때는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이 나를 가리키며 “쟤도 제법 하지.”라고 말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체육대회 때 에어로빅 같은 응원전을 준비하는 핵심 멤버에도 늘 뽑혔다. 계주는 첫 주자와 마지막 주자가 중요하기에 나는 주로 두, 세 번째 주자로 선정됐다. 체육부장들은 대체로 교우관계도 좋고 리더십도 뛰어났다. 내 눈에도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운동 잘하는 친구가 더 멋져 보였다.


사춘기 이후로는 여학생들 대부분이 몸 쓰며 운동하는 걸 즐거워하지 않았고 체육 수업도 교실에서 자습으로 대체될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조차 체육부장은 가끔 “오늘은 운동장에 나가서 수업하자!"라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체육 시간을 제일 좋아하던 나는 그럴 때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학창 시절 중간, 기말고사에서 얼마나 틀리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체육 실기를 만점 받지 못하면 큰 실패를 겪은 양 우울해했다. 체육 이론 시험에서 틀릴지언정 체육 실기 시험은 만점을 받아야 직성이 풀렸다. 고3이 되자 예체능 수업은 대부분 자습으로 대체하고 체육대회도 3학년은 참가하지 않게 되어서 좀이 쑤시고 아쉬웠다. 


남녀공학인 대학에 오니 피 튀기는 수강 신청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교양 체육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곳곳에 농구대가 있고 운동장에 트랙도 잘 되어 있고 축구장도 있었지만 전부 남학생들 차지였다. 궁금해졌다. 그 많던 여자 체육부장들은 어디로 갔지? 달리기를 잘하고 구기 경기도 잘하던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처럼 답답하지 않을까? 남자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도 사회인 야구단이니 조기 축구회니 이런저런 이름 아래 우르르 몰려 운동을 한다. 아예 운동으로 진로를 정하지 않은 이상 취미로 몸을 잘 쓰던 여성이 성인이 된 후 생활 체육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배드민턴, 탁구처럼 두어 명만 모여도 할 수 있는 운동은 아줌마가 되어서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열 명, 스무 명 모여야 하는 운동을 하는 여성 생활체육인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요즘은 축구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인기를 얻고 축구나 풋살을 즐기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이고, 어디엔가 있다는 공 차는 그녀들이 내 주변에는 아직 없다.  



[울림의 몸 이야기] 그 많던 체육부장은 어디로 갔을까?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막바지에 농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호주 남쪽에 있는 타즈매니아라는 섬 일주를 했다. 그때 2주간 같이 투어를 다닌 일행 중에 몸이 단단해 보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또래 여성이 있었다. 호주인인데 외국인들과 함께 투어를 다녔다. 여기 살아도 못 본 곳이 많아서 투어를 신청했다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항상 공을 갖고 다녔다. 일반 축구공보다 조금 작은 공이었는데 그걸로 여행 사이 쉬는 시간에 공터에서 공을 차거나 드리블을 하곤 했다. 


하루는 산을 하나 넘어서 해변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다시 산을 넘어 차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일행 중 산행이나 트레킹 때마다 함께 선두에 있었기에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꽤 친해진 터였다. 작은 배낭에 도시락, 물, 수건, 갈아입을 옷 등을 챙겨서 산행을 했는데 해변에 도착하고 짐을 풀어보니 그의 가방 안에는 어김없이 공이 있었다. 다른 일행을 기다리면서 먼저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하고 쉬다가 그가 캐치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 크지 않은 공이었기에 한 손으로 던지고 받기가 가능했다. 모래사장에서 공을 주고받다가 바다로 들어가서도 계속 랠리를 이어갔다. 농장에서 삽질, 호미질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산행도 했지만 공놀이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무 신나서 가이드가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재촉할 때까지 계속 공을 주고받았다. 


몸을 대충 닦고 다시 산을 오르는데 그가 물었다. “너는 무슨 운동을 하니?” “응? 운동 안 하는데?” “말도 안 돼! 너 운동 진짜 잘해! 나는 취미로 배구랑 축구를 하는데 우리 팀원들보다 네가 캐치볼 더 잘하던데. 한국에 돌아가면 꼭 운동을 해! 너를 기다리는 팀이 있을 거야.” 그의 칭찬이 고마웠지만 한국에는 선수가 아닌 이상 여성이 취미로 구기 종목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부족한 영어로 띄엄띄엄 설명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호주는 땅이 넓다 보니 도시에도 넓은 공원이 곳곳에 있는데 야구나 소프트볼, 크리켓, 호주 풋볼을 하는 여성들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종종 산책하던 내 발치까지 온 공을 던져주기도 했는데 여럿이 팀으로 하는 운동을 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런 환경에서 살기에 투어에서 만난 친구는 산행을, 운동을 즐거워하는 내가 운동을 할 거라고 자연스레 예상했을 것이다. 한국에 가면 나처럼 좀이 쑤시는 운동 좋아하던 여성들, 체육부장들을 좀 찾아볼까? 여성 일반인 배구단, 농구단 같은 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시 상상해 보았다. 


예상하듯,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다시 앉아서 술만 마셨고 몸은 무거워져 갔다. 지금은 혼자 헬스나 필라테스, 요가를 배우러 가는 것조차 어려운 애 둘 엄마이지만, 집 앞 산책도 아이들 등, 하원 때 하는 게 전부이지만, 가끔 궁금하다. 기깔나게 운동하던 체육부장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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