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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l 03. 2024

춤추고 싶어요

[울림의 몸 이야기]


공대에 입학했다. 2박 3일 ‘새내기 새로 배움터(OT, 이하 새터)’를 가기 전 2월 초에 하루 일정으로 ‘새내기 미리 배움터’가 먼저 열렸다. 각 조 당 열명 남짓 새내기들이 배정되었는데 여학우가 한 명이라도 있는 조가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자연스럽게 장기자랑은 여학우를 중심으로 짜였다. 남학우만 있는 조는 차력을 했다. 여학우가 여자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선배들은 손뼉을 치며 뒤로 넘어갔다. 우리 조는 장기 자랑에서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에 맞춰 공연을 했다. 내가 노래하고 춤추고 남자 동기들은 백댄서를 맡았다. 물론 안무는 다 내가 알려주고 연습시켰다. 고딩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핑클, S.E.S 흉내 내며 노래하고 춤춘 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재밌는 여학우가 들어왔다고들 반겼다. 동기들은 옆에 와서 “솔직히 말해봐. 독서실 간다고 뻥치고 신분증 위조해서 나이트 다녔지?”라는 등의 헛소리를 농담이라고 던졌다. 그렇게 주목받는 건 처음 겪는 일이라 조금 들떴다. 



그날의 공연 이후 MT, 발대식, 개강 잔치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늘 불려 나가서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했다. 여학생이 드문 공대에서 환호하는 남학생들 앞에서 여자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나를 많이 불러주고 좋아해 주는 게 그저 신났을 뿐이었다. 새터 때는 당시 유행하던 왁스의 ‘오빠’를 불러서 오빠들이 열광했다. 나이를 좀 먹은 후에는 왜 소녀시대가, 아이유가 노래에서 그렇게 오빠를 찾냐고 비판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새터 때 ‘오빠’를 불러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불렀고 과연 반응이 좋아서 뿌듯해했을 뿐이다. 다행히 새내기 여학우의 춤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새내기는 곧 헌내기가 되기 마련이고, 다음 해에는 또 다른 새내기 여학우에게 열광하게 되었으니. 



새터 때는 장기자랑 외에도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새내기 율동패로 활동했다. 미터 때 춤추는 걸 보고 공대 학생회 선배들이 불러서 율동을 가르쳤다. 문선이라고 부르는 학교도 있던데 우리는 그냥 율동이라고 불렀다. 새터 때 무대에서 새내기 율동패 여학우, 남학우가 짝을 맞춰서 짝춤을 췄는데 그때 짝이 지금의 남편이다. 그때는 키 크고 잘 생긴 건축과 남학우와 짝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10년 뒤에 그 짝과 결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우리에게 “너네 지금 짝춤 추고 10년 뒤에 결혼한다”라고 했으면 나도 남편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화를 냈을 거다. 



아무튼, 학생 운동을 열심히 하던 학교라서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는 꼭 민중가요가 울려 퍼지고 노래패와 율동패가 공연을 했다. 나는 학부에서는 노래패를, 단과대에서는 율동패를 하며 새내기 시절을 바쁘게 보냈다. 율동패의 안무는 아이돌 안무에 비하면 유치원 수준이다. 사춘기 시절 입 닫고 무게 잡던 십 대들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동요 같은 희망찬 민중가요에 맞춰 팔다리 쭉쭉 뻗고 콩콩 뛰면서 율동을 하다니, 우스꽝스러웠다. 그런데 율동이라는 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다. 에너지 넘치는 20대 초반, 율동패 친구들은 술을 마셨다 하면 율동 안무를 과격하게 과장해서 뛰면서 춤을 췄다. 몇 시간이고 췄다. 선배들 따라서 데모도 종종 나갔지만 나는 큰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민중가요 부르고 율동하는 게 좋아서 쫓아다녔던 것 같다. 



축제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분위기가 다양한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했다. 발랄한 곡도 있었고 비장하게 민중의 앞날을 위한 젊은이의 역할을 설파하는 곡도 있었다.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늦게까지 연습을 했고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공연을 했다. 사실 축제 때는 모두들 술을 마시면서 공연을 곁눈질로 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의 율동에 집중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넓은 무대에서 온몸을 써서 춤을 추는 게 즐거웠다.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출 때보다 관객 반응은 없었지만, 안무는 유치했지만, 나는 자유롭게 춤췄다. 





[울림의 몸 이야기] 춤추고 싶어요.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하던 스무 살 울림


휴학생 시절,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후 복학 전에 댄스 학원에 다녔다. 당시에는 재즈 댄스가 유행이었다. 호주에서 농장에서 일하며 군살이 싹 빠진 상태였고 몸을 쓰다 와서인지 처음 배우는 재즈 댄스도 곧잘 따라 했다. 하루는 강사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어리면 본격적으로 춤을 춰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려고 했다던데 내 나이를 듣더니 취미로 열심히 다니라고 했다. 기뻤다. 그것 보라고, 어릴 때 무용을 했어야 됐다며, 무용 학원 안 보내준 엄마한테 볼멘소리를 했다. 재즈 댄스는 재밌었지만 복학 후에는 학교생활이 바빠서 한동안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살이 쪘다. 살이 한참 찌고 난 후에 다시 재즈 댄스를 배우러 갔는데 처음 만났던 선생님이 그대로 있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며 친한 척을 했는데 살찐 몸을 본 후로는 내 몸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때보다 몇 kg 찐 거야?” “너 그럼 사과 몇 박스만큼 찐 거야. 그걸 몸에 이고 지고 다니는 거야.” 날씬했던 나에게 춤에 소질 있다고 하던 그는 이제는 내가 열심히 안무를 따라 하면 표정 진지한 거 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예능에서 덩치 있는 개그우먼들이 여자 아이돌 안무를 따라 추면서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시라. 재즈 댄스 수업에서 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날씬한 수강생들은 강사가 나를 놀리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미안해서 차마 눈 똑바로 마주치고 웃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점점 댄스 학원 가기가 싫어졌다. 살이 쪘어도 여전히 나는 춤추는 게 즐거운데, 숨이 좀 차도 나는 여전히 춤 배우는 게 재밌는데, 놀림당하면서 출 만큼 좋아하진 않았다. 살을 빼고 다니면 됐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댄스 학원을 그만두기를 택했다. 어릴 때부터 늘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은 살찐 내게 춤은 더 이상 즐거운 취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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