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집 앞 놀이터 한가운데에는 나무로 된 커다란 구조물이 있었다. 밧줄 타기와 미끄럼틀, 작은 구름사다리, 철봉, 시소 등이 붙어있는 구조물이었는데 고학년들이 ‘땅 안 밟고 얼음 땡’을 하는 장소였다. 저학년들은 더 작은 구조물에서 ‘탈출’이라는 놀이를 했다.
‘땅 안 밟고 얼음 땡’은 술래가 정해진 장소에서 열을 셀 동안 나머지 참가자들은 땅을 밟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놀이다. 열 세는 건 물론 “이오십!(2 X 5=10)” 하면 끝난다. 고로 바람처럼 빨리 피해야 한다. 나는 주로 널찍한 판까지 뛰어간 후 거기에서 시소로 뛰어서 안장에 두 발로 착지하거나, 시소에서 앞에 있는 미끄럼틀에 철봉을 잡듯이 뛰어서 매달린 후 기어 올라가거나, 건너편 철봉으로 뛰어서 매달린 후 양옆의 구조물들로 이동했다. 구름사다리 위로 걸어서 건너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높은 곳에서 균형 잡고 걷는 것보다는 뛰고 매달리는 걸 더 잘했기에 그 기술은 정말 피치 못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았다. 뛰고 매달리고 이동해서 술래가 오기 힘든 장소에 도착하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기다리면 된다. 그러다가 먼저 얼음을 한 친구들이 있으면 반대 방향으로 다시 뛰고 매달리고 이동해서 땡을 해주곤 했다. 글로 적으면 길지만 실제로는 몇십 초, 몇 분 안에 한 게임이 끝난다. 놀이터 친구들은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이 얼음 땡을 했기에 우다다다 초스피드로 도망가고 잡으러 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또 높은 곳으로, 팔로 매달리고, 발로 점프하고 뛰고. 온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운동이자 놀이였다.
5학년 때 새로 생긴 방송국인 SBS에서 <피구왕 통키>를 방영했는데 피구에 목숨 거는 황당한 내용이지만 그때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집집마다 피구 공이 있었고, 매일 모여서 피구 연습을 했고, 수시로 반 대항 피구 경기가 열렸다. 나는 체육부장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육부장이 반 대항 경기를 위해 팀원을 고를 때 서너 번째로 뽑히는 정도로는 운동을 잘했다. 통키처럼 우리도 제법 비장하게 피구 연습을 했다. 대각선 위에서 내리꽂는 던지기, 옆으로 뻗은 팔을 몸 뒤까지 젖혔다가 팔 전체 힘을 써서 던지기, 가까이서 던지는 공 받기, 발을 노린 공 피하기 등등 편하게 몸이 움직이는 대로가 아니라 안 되는 동작을 연습해서 다양한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게 훈련을 했다. 해가 질 때까지 피구 연습을 하고 집에 가면 팔에 멍이 들어있곤 했다. 아프지만 뿌듯했다. 피구 공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을 했다. 경기에서 이긴 날도, 진 날도 있었지만, 승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피구를 하는 그 순간 그저 너무나 즐거웠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터에서 숨이 찰 때까지 뜀박질하고 매달리고 뛰고 공놀이를 하고 놀았다. 날마다 내 몸의 한계를 시험하고 극한까지 몸을 움직였으며 매일 더 잘하게 되었다. 철봉을 할 때, 얼음 땡을 할 때, 피구를 할 때 나는 땅에 묶여있는 몸이 아니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을 여러 번 느꼈다. 내 몸은 멈출 줄 몰랐고 나는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