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어릴 때 내 손바닥은 굳은살투성이였다. 초등 시절 내내 손바닥 윗부분 가로 손금 위에 네 개의 커다란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 사이 살도 딱딱했다. 수업 시간 외에는 늘 학교나 놀이터 철봉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살에 딱딱하고 단단한 쇠막대가 계속 마찰되니 물집이 잡혔다가 벗겨지고 또 물집 잡혔다가 벗겨지며 피가 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굳은살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살이 벗겨져서 빨간 속살이 드러나고 피가 배어 나올 때 아프지 않았던 건 분명 아닌데 뭔가 희열이 있었다. 내 몸을 단련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영광의 상처들이기에 성취감을 줬다. 아파서 눈을 찡그리고 입술을 깨물면서도 뿌듯했다. 집에 와서 빨간약을 바르고 다음 날이면 또 나가서 철봉을 했다.
하교 후에는 원숭이처럼 철봉에 매달려 있었는데 집 앞 놀이터에는 세 종류의 철봉이 있었다. 키에 맞게 골라서 오르면 되는 일자 철봉, 평행봉, 구름사다리 셋이다. 낮은 일자 철봉에는 다리를 한쪽 걸고 반동으로 몸을 세워서 회전하는 매달리기를 주로 했고 아니면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내 키만 한 철봉은 멀리서 뛰어서 잡고 매달리거나 거꾸로 매달려서 놀았다. 높이 뛰기를 해야 잡을 수 있는 제일 높은 철봉은 ‘허수아비’를 위한 공간이었다.
허수아비 놀이 방법
1. 술래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렸다가 멀리뛰기를 해서 착지한 후 한 발씩 번갈아 가며 ‘허! 수! 아! 비!’ 외치며 네 번 뜀박질을 해서 정지한다. 각자 보폭에 따라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진다.
2. 술래는 철봉 아래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허수아비처럼 서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방어한다. 움직일 수 없다.
3. 다시 철봉을 향해 허, 수, 아, 비를 외치며 네 번 뜀박질을 해서 돌아간 뒤, 술래의 몸에 닿지 않게 철봉에 매달린 후 술래 뒤쪽으로 이동하면 이긴다. 술래 몸에 닿으면 진다.
술래는 최대한 몸을 넓고 길게 펴서 아이들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고는 철봉 뒤편으로 지나갈 수 없도록 서 있어야 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술래 몸에 닿지 않기 위해 발을 달랑 들고 철봉 위에 오르거나 옆 기둥에 매달리거나 서커스에서 링을 통과하는 것처럼 철봉 기둥과 술래 사이의 공간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아도 놀이터에 나가면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놀이를 할 만큼의 인원이 모이면 자연스레 “허수아비 할까?”라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 나는 멀리뛰기도, 매달리기도 잘해서 진 적이 거의 없다.
평행봉은 쉼터였다. 체조 선수처럼 양옆 철봉을 한쪽씩 잡아 매달린 후 몸을 올려 지탱하거나, 한 바퀴 돌아 착지하거나, 한쪽 철봉에 양손으로 매달린 후 허공에서 점프해서 다른 철봉으로 옮겨 매달리기 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행봉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은 어깨를 한쪽 철봉에, 오금을 다른 한쪽에 건 채 매달려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봉과 내 몸이 만든 셀프 해먹이랄까. 그 상태로 앞에 다른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참견을 하기도 하고 하늘을 감상하기도 하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뒤쪽으로 누가 오는지 보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구름사다리는 내 전용 놀이터였다. 보통 운동 좀 하는 친구들은 세 칸씩 매달려서 건너갔고 못 하는 친구들은 한 칸도 겨우 건너갔지만 나는 기본 네 칸, 힘을 좀 더 내면 다섯 칸씩 건너서 매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때는 마른 체형이라 날렵하기도 했고 중력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매달린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허공에서 날듯이 옮겨 다녔다. 나중에 자연 다큐에서 나무를 타는 원숭이의 모습을 보고, ‘아! 내가 원숭이의 자손이구나!’ 절감을 했을 정도로 내가 구름사다리를 탈 때의 자세와 똑같았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구름사다리는 집 앞 놀이터보다 훨씬 크고 길었는데 거기서 네다섯 칸씩 건너다니다 보면 바람을 가르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부드러운 손바닥 따위 백 번이고 희생할 만큼의 기쁨을 철봉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