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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Dec 11. 2019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는 집단 최면

<입시충>


2020 수능이 끝났다. ‘수능 등급컷’은 그날 오후 내내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입시학원이 그들만의 해석대로 서열화한 대학 리스트가 커뮤니티를 돌고 돌았다. A대와 B대 중 어딜 갈까요? 같은 질문이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누군가는 안정적으로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겠다며 안도했지만 누군가는 재수를 결정해 이미 재수학원이나 기숙학원을 등록했다. 어쩌면 ‘적당한’ 학교에 붙을지도 모르니 재수와 반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했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일단은 성적표를 받을 때까지 놀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어떤 곳에선 성적이 나오기도 전에, 아니 누군가에게 시험을 잘 못 본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전에 제 목숨을 포기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고3이던 2005년과 14년이 지난 2019년은 별로 다르지 않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달라진 건 입시 전형뿐, 고3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양 여기는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열아홉들이 ‘대학만 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 일 거라는 마약 같은 주문을 외며 고3을 보낸다.



[입시충. Homo examiens. 2016]

<입시충>은 2015년 당시 고3이던 감독이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1년간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이자 출연자인 재우는 8개의 학교에 수시 원서를 접수한다. 일반대학은 6개까지, 예대와 예종은 일반대학 범주에 들지 않기에 총 8개의 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게 된다. 연초에 수시 원서를 접수하게 되면 그날부터는 진정한 싸움이다. 수시 합격을 기다리면서 (혹시 모르니) 수능 공부도 해야 하고 동시에 멘탈 관리도 해야 하는 고난도의 노력과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이라는 것들이 참 얄궂은 게 수시 전형의 논술이나 면접, 실기 일정은 같을지언정 합격 발표 일정은 제각각이다. 그러니 원서 개수와 시험은 한정적인데 감정은 무한대로 널뛰는 일을 곧잘 겪게 된다. 재우 역시 그 감정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는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정말 중앙대에 가고 싶어요. 중앙대만 붙는다면!”라고 카메라를 보며 열심히 빌고서는 중앙대에 불합격하니 금세 “경희대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를 외치는 것이다. 재우는 이렇게 가고 싶은 대학이 아주 여러 번 바뀌는데, 이 일은 그야말로 ‘웃프다’.


계절이 바뀌고 수능은 다가오고 합격 발표일마다 긴장과 좌절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혼자만 겪는 게 아니다. 재우가 고3 일기를 만드는 동안 친구들의 모습도 상당한 분량으로 기록되는데, 누군가는 먼저 대학에 붙고 누군가는 공부를 포기한 듯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때론 ‘고3이 뭐고 수능은 뭐냐’ 싶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내지르고 날뛴다.

대학에 가고 싶은 재우는 기대와 좌절을 반복한다 / 이미지 출처: <입시충>

‘빨리 지나갔으면’ 하다가도 수능이 다가오면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 시간은 내 마음과는 하등 상관없이 부지런히 흐르고, 재우와 친구들의 고3은 막을 내린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도 끝이 나는가 싶더니, 시간은 어느새 1년 후. 재우는 몇몇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너의 고3과 너의 지금을 묻는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대학을 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4년제를 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좋은 대학을 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친구들이 누군지를 일러주는 이름 자막엔 대학생일 경우 학교와 전공이, 그렇지 않은 경우 학업을 중심으로 한 소개글이 적힌다. 전자의 경우 UNIST 재난관리공학과, 영산대 동양조리학과로, 후자의 경우 영국 대학 이름(이 친구는 영국 유학을 앞둔 친구로, 파운데이션 과정 후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재수 같은 식이다.


그들은 자신의 고3과 현재 사이의 일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긴 학교와 전공, 재수생이냐 유학이냐에 그치지 않는다. 재우가 한양대에 떨어진 날 옆자리에서 합격의 기쁨을 맛본 준우는 1년 간의 서울살이에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전공도 잘 맞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적응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공을 바꿔 재입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태경은 조리학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제대로 배워보니 옛날보다 요리가 재미있질 않다. 고3 땐 뭐라도 해야 했는데, 특히 공부를 안 할 거면 다른 걸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는데 그게 요리였던 거다. 정말 요리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공부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재우. 수많은 대학에 떨어지는 과정을 모두 겪어낸 후 한예종에 입학한 그는 대학만 오면, 서울에만 입성하면 모든 게 달라지고 찬란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학에 오니 과제에 치여 서울의 문화생활은 즐기지도 못한다. 재우와 친구들은 단지 학교와 전공으로만 소개되기엔 지난 1년 간 많은 걸 겪고 생각했다. 대학이란 트로피는 생각보다 찬란하기만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와 내 친구들 역시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는 동안 대학생 vs재수생, 명문대생 vs 비 명문대생으로만 분류되곤 했다. “00이는 뭐한대?” “걔 **대 갔잖아” “@@이는?” “걔는 재수해” 그런 말들. 그리고 그 말들로 모든 게 설명되던 날들. 사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딱 열아홉만 벗어나도 그 말이 뭔지 아는데 우린 당당히 주장하지 못하고, 그래서 정말로 그런 줄 알면서 산다.



그렇다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


5년 전, 아르바이트로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은 1년 전 한 다큐멘터리에 ‘특성화고의 미래’로 소개됐는데, 천편일률적으로 대학만 바라보는 사회에서 특성화고에 진학해 기술을 배우고 누구나 알 만한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취업한 이들이었다. 흔히 갖는 선입견과는 달리 연봉도 좋았고 사무직으로 근무하게 된 학생들도 꽤 많았다.

내 일은 1년이 지난 후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는 것이었는데, 대략 90%의 학생이 대학 진학이 목표라고 답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니 더 업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실무만 배우고 오니 이론이 아쉽더라고요” 뒤에 붙는 말은 “아무래도 대학을 나와야겠더라고요”였다. 왜냐는 질문에 그들은 사회적 시선, 느린 승진, 친구들과의 괴리감을 이유로 꼽았다. 분명 1년 전엔 취업 소식을 듣고 활짝 웃으며 “대학에 가지 않아도 행복하다”라고 했는데 말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다는 건 꽤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유를 묻지 않았대도 이해가 됐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 대학을 가려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이 사회에선 평범해지기 위해 대학에 간다.


그래서 어떤 고3이 “대학에 가지 않는 건 어떨까요?”라고 묻거나, 어떤 대학 재학생이 “대학을 자퇴하면 어떨까요?”라고 묻는다면, 결국 선택은 너의 몫이니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냐고, 일단 가고 일단 다녀보고 아니면 쉬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할 거다.


대학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대학이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고3이던 2005년부터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달라진 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시일 내에 달라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더해서 말하고 싶은 건 어쨌든 “대학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가고 일단 다녀보면 인생의 경험치를 쌓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 간다고, 못 간다고 해서 당신의 세상이 보잘것없거나 하찮아지는 건 아니다. 잠깐 좌절할지언정 평생 이고 갈 짐은 아니고, 한 번 아쉬울지언정 내내 열등감을 가질 일도 아니며, 한 번 비참할지언정 목숨과 바꿀 일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인생에선 대학보다 더 빛날 성과가 무궁무진할 테니까. 입시는 달라지지 않았대도 이 또한 빈번히 보고 겪는 현실이니까. (만약 대학이 가장 빛나는 업적이라면 그건 너무나 아쉬운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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