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이야기 연습
결국 입이 화근이었다. 아니 무엇이 화근이었는가를 정확히 따져보면 꼭 입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지 못한 그의 불 같은 성격이 더 화근일 것이요, 평소에 그런 생각을 담고 있었던 그의 머리통이 또 다른 화근일 것이요, 선장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핍된 그의 주의력 역시 화근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장소에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선장이 마침 딱 맞게 나타난 이 상황은 누가봐도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그는 자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팔과 다리가 묶이는 와중에도 그는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 인간은 보이는 반응은 대개 다음의 두 가지다. 도피하든지, 분노하든지. 그는 후자였다. 그는 속에서 뜨거운 쇳물 같은 것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쇳물이 가슴을 달구고 목구멍을 녹이고 입천장에 다다를 무렵, 선장실의 문이 열리고 선장이 갑판을 밟았다. 선원들이 그를 선장 앞으로 데려가서 꿇어앉혔다.
「이런 미천한 놈. 자기 잘못을 아는지는 모르겠군.」 선장이 혀를 찼다. 「선장님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니 설령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러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는 일단 하소연해보기로 했다. 「이거 정말 상황파악 못하는 놈이구먼. 네가 지금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신성모독죄는 즉결 처형이야. 혹시 몰라서 마지막 기회를 주려했건만, 영 싹수가 안 보이는군.」 즉결 처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몸이 식어버렸다. 공포가 울분을 이긴 셈이다. 사실 그가 태세를 전환한 이유가 곧 그에게 벌어질 일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생존을 위한 전략적 이성 덕분인지 알 수는 없다. 어찌되었건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들소같이 가로막는 걸 모두 박아버릴 것만 같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같은 머저리가 뭘 알겠습니까? 하느님은 언제나 저희를 굽어 살피시는 전지전능한 분입니다. 저는 하찮은 인간일뿐더러 인간 중에서도 못나고 별볼 일 없는 족속인데 저따위가 하느님께 사소한 불평을 했다고 그게 큰일이겠습니까? 제가 잠깐 머리가 돌아서 이상한 소리를 했나봅니다. 선장님께서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정말 이 일이 하느님이 제게 크나큰 은혜를 베푸신 걸로 알고 더더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흐으음 선장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다른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 필사적인 항변, 대상이 분명하지 않았던 아첨은 배 위에서 그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선원이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리고 그를 어깨에 인 채로 갑판의 끝자락 난간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려했으나, 그럴 때마다 선원들이 주먹이 그의 배와 옆구리를 때렸다. 그는 결국 축 늘어졌고, 이제 정말 바다에 빠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시야에는 온통 바다, 잔잔히 물결치지만, 그의 생명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종국에는 그의 무덤이 될 그 짙은 남색의 표면뿐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몸이 공중에 떴다. 그 때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잠깐.」 선장의 목소리였다. 「생각해보니, 저 놈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 아무리 신이 없니 뭐니 그딴 소리를 하긴 했어도 회개한 사람을 내 손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 다시 건져올려봐.」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채, 캘록대면서 그는 이게 감사해야할 일인지, 감사해야한다면 누구에게 해야하는 지 고민했다. 아주 잠깐 동안.
혼란 속에서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작은 보트 위였다. 보트는 그가 몸을 뉘이는 공간이 다일 정도로 아주 작았고, 그의 신체를 제외하고 다른 물건(이를테면 식량)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타고 있던 상선은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에게 아까 생존을 위해서 참았던 것인지, 공포에 질렸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그 들소의 기운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아이 미친놈들아, 광신도종자들아, 아무리 신이 좋아도 그렇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이 꼴로 만드는 게 말이 되냐, 이 개종자들아. 니들이 그렇게 듣기 싫다면 한 번 더 말해주마, 신이 있을 거 같냐, 신이 있어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냐. 누군진 몰라도 참 심보 고약한 놈이구나, 너네들이 그렇게 안달내는 신 놈의 상판 한 번 보고 싶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그냥 확 오줌을 뿌려버릴까보다!」 그는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쏟아낼 욕지꺼리가 떨어졌을 때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외쳤다. 「신은 없다. 신은 없다. 신은 없다. 신은 없다고!」 몇 번을 반복했는지 그 자신도 잊어버릴 만큼 그는 그 외침 속에 몰입했다. 성대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가혹하게 학대하면서 온 몸의 빈 공간이란 빈 공간을 모조리 공기의 떨림으로 채워서 그는 외쳤다. 이윽고 그는 입은 옷을 모조리 벗어서 머리 위로 돌려대면서 소리질렀다. 구름 한 점 없는 거대한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햇볕이 쏟아졌다. 거의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은 망망대해 속에서 외침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 순간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총알이 그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다리가 풀리고 몸이 꺾였다. 의식이 흐려진다. 특이한 점은 그럴수록 어떤 생각이 더욱 더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실제로는 이틀 정도가 지났지만 그는 의식이 흐려진 채 떠다니는 조난자였기에 그가 알 방법이 없었다. 지혈할 방법이 없어서 피가 아주 많이 흘렀다. 그의 눈앞에서 낮과 밤이 바뀌어갔다. 흐려진 의식 속의 세계에서 파란색, 쪽빛, 흑색, 하늘이 보여주는 색의 모든 스펙트럼이 합쳐져 갔다. 밖의 세계는 무풍지대의 적막 그 자체였지만, 안의 세계에세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아니 사실 그건 폭풍우가 아니었다. 바다와 하늘이 섞이다가 분리되고 다시 섞이고 일출과 일몰의 강렬한 불빛이 바다 속에서 사라져서 순식간에 어둠에 덮히는 그런 초현실적인 현상이었다. 다만 그의 관념 속에서 그와 가장 비슷한 것이 폭풍우였을 뿐이다. 그는 바다의 폭풍우보다 더 거대한 천재지변을 본 적이 없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는 며칠 동안 더 사경을 헤멨다. 그럼에도 겨우 마지막 생명력을 태워서 또렷하고 건강한 의식을 되찾았다. 화광반조였다. 그는 그동안 압도적인 신비체험의 기억을 되뇌이며 부르짖었다. 사실 이 역시도 그가 전략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복종심과 경외심으로 시작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다음부터의 행동이 그에게는 걸어봄직한 도박이었다는 점이다. 죽음을 앞둔 그는 잃을 게 없었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는 빼앗아 올 것뿐이었다.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느님을 모욕한 것은 제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과거의 저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신비로운 기적을 몰랐습니다. 과거의 저는 보이는 것만을 믿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죄를 뉘우칩니다. 저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어린 종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를 하는 동안, 그는 도저히 죽어가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생명력을 뿜어냈다. 그는 그 몸에서 차오르는 생명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제 모든 것을 바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누군가를 모욕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루시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루시, 나의 루시, 하느님 제게 다시 한 번 루시를 만날 기회를 주세요. 하느님 존경합니다. 하느님 만세, 하느님 만세. 하느님 만세...」
그때 그는 점점 흐릿해져가는 육체의 감각 속에서 등 뒤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죽음의 냄새, 흐릿한 무감각과 피로를 몰아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그의 등 안 쪽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분명 이질적인 생명력이었다. 마침내 그 강렬한 열기와 생명력이 조금씩 고통이 되어서 그가 신음소리를 냈다. 등의 살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그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는 온 몸을 꼬았다. 아주 오랫동안의 고통스런 목소리가 정적을 메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등에서 무언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조류의 날개였다. 아주 거대한 조류의 날개.
그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떠올랐다. 그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멀리 그를 버리고 간 배가 보였다. 그는 순식간에 그 위로 움직였다. 선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 병신들아, 결국 신이 선택한 것은 너네가 아니라 나다. 백날 신이 좋다고 물고 빨고 해봐라. 이 등신들아, 신이 없다고 신을 조롱하고 모욕한 내가 선택받았다고. 아이고 그 동안 헛수고 한다고 고생 많았다. 어이구 등신들. 내가 바로 신의 사자다. 내가 바로 신의 사자다.」 그가 비할 데 없는 환희 속에서 외쳤다.
그런데 조금씩 그의 몸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선원들과 선장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는 비행능력을 잃어버린 새처럼 점점 가라앉았다. 결국 거대한 날개 끝자락이 바닷물에 닿았을 때 그는 젖어오는 날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허우적댔다. 사실 여러분이 알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게 아니라면 이것도 결국 입이 화근이었나? 아니면 또 다른 화근을 찾아야서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가? 그가 있던 바다의 표면에 거품이 몇 개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