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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곰 Sep 29.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4)

3장 : 시장통 단칸방에서 피어난 추억

어린 시절, 내가 자랐던 시장의 아침은 그 어느 곳보다도 일찍 시작되었다. 어른들의 하루는 동이 트기도 전에 열렸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가 아직 피부에 스며들기도 전에 가게 문이 하나둘씩 열리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물건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바쁜 어른들 사이에 어머님도 계셨다. 언제나 손님을 맞이하러 나서셨고, 이른 아침부터 피곤한 기색 없이 손님을 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장의 아침이 일찍인 만큼, 시장통 단칸방에 살던 우리 아이들의 하루도 자연스럽게 일찍 시작되었다. 사실, 시장통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건 그곳에서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골에서는 언제나 혼자서 놀았던 내가,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꼬마곰아, 같이 놀자!” 하고 외치는 또래 친구들의 목소리로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급해져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입에 대충 넣고는 동생 손을 끌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도 모든 순간이 설레고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단칸방에 살던 우리 시장통 아이들의 삶은 서로 닮아 있었다. 비슷한 형편이었기에 더 이해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동네 아이들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시장통 아이들은 늘 함께 어울러 다녔다. 작은 골목부터 가게 앞까지 우리만의 놀이터가 되었고, 어디를 가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방구차가 골목 끝에 모습을 드러내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가 환호하기도 하였고, 밤이 되면 콜라병에 작은 폭죽을 꽂아 밤하늘에 우리만의 불꽃놀이를 그리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놀이가 끝없이 이어졌다. 술래잡기, 숨바꼭질, 깡통차기... 매번 다른 놀이가 태어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병 줍기 놀이'였다.


우리는 늘 정해진 시간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이들 모두 작은 손에 봉지를 하나씩 들고, 시장통 곳곳을 누비며 빈병을 모으는 게 우리만의 놀이이자 일상이었다. 빈병을 모아 가게에 가져가면 몇 푼의 돈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사탕이나 과자를 사서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서로 경쟁하듯 더 많은 병을 찾으려 애썼다. 어떤 친구는 자기 집에서 몰래 가져오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지며 몰래 빈병을 챙기기도 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뛰어다니던 그 시간은 그저 공병을 줍는 일이 아니었다. 어린 우리들에겐 모험이었고, 경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우정이 자라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시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곳이라 믿었다. 빽빽한 가게들, 손님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성.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세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자랐던 그 시장은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조차 남아있지 않다. 번성하던 가게들, 그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발자취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시장통 단칸방에서 살던 우리들만의 작은 세계는 이제 기억 속의 풍경으로만 남아 있다.


그때의 웃음소리와 따스한 추억들은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만 살아 숨 쉰다. 그 작은 단칸방에서, 빈병을 찾아 뛰어다니던 그 길목에서,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웃던 그때의 우리는 모두 어디에 있을까. 그리움으로 가득 찬 그 시절의 조각들은 사라진 시장을 대신해 내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리운 친구들과 다시 마주친다면 묻고 싶다. 그때 우리, 참 행복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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