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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by 점빵 뿅원장

오래간만에 평일 점심식사를 아내와 함께 했다. 아내는 작년 말에 퇴사를 하고 올해 초부터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점심을 먹으며 '내가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소재거리를 하나 주겠단다. 아니라고, 전혀 안 필요하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소재거리를 받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열심히 글을 써보려던 결심이 또 무너지게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슨 얘긴가 궁금하긴 해서 물어봤더니 얼마 전 과속 딱지가 날아온 이야기를 해준다.


얼마 전 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직장을 퇴사한 이유도 몸이 아파서였다. 작년 후반기에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 파업으로 인해 수술 날짜가 많이 밀려서 올해 4월이 되어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전날 아내는 입원을 했고, 다음 날 오후 1시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수술 당일이었다. 보호자가 옆에서 있기 어려운 간호 간병 병동이어서 전날 집에서 자고,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도착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침부터 뭔가 일이 많이 생기는 거였다. 치과 문을 닫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회계사무실에서 연락이 왔고, 작년도 기공소 거래내역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 것에 대한 확인을 요청받았다. 회계사무실의 확인대로 계산서상에 착오가 있었는데, 기공소에 연락을 해보니 담당자분이 뭔가를 잘못 처리하고 있었다. 기공소장님도 여기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얘기가 길어지고 병원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 시간까지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기에 늦을 거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차를 출발하고 병원까지 반쯤 남았을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앞 수술이 일찍 끝나게 되어서 아내의 수술도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며 이따가 보자고 한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수술실에 혼자 들어가야 된다고? 보호자가 안 왔는데 수술을 시작한다고? 이렇게 얼굴도 못 보고 들어가는데 만에 하나 뭐가 잘못되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별의별 상상이 되어서 급하게 차를 몰았다. 그날따라 과속 카메라는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이 길에 차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앞차는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건지... 아내를 못 보고 수술실에 들여보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찔찔 울면서 평소에는 하지 않는 과속운전을 했다(물론 카메라 근처에서는 조심스럽게 피했다... 고 생각했다).


주차장에 차를 던져 놓다시피 세우고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달려갔다. 가보니 수술자 명단 모니터에 '수술준비 중'이라는 글이 쓰여있다. 혼자 수술방에 들어가게 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나는 무너진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종합병원 근무 경험상 아직 시작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수술실 인터폰을 눌렀다. 수술실 간호사 선생님이 나오셨고, 혹시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는지 여쭤보았다. 아직 대기 중이란다. 간호사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내 얼굴이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는지 헤드캡과 마스크를 쓰고, 소독 가운을 입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의료진과 안경을 벗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내가 보인다. 안경을 벗고 있어서 그런지 곁에 다가갔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내가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둘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글썽거렸다. 잘하고 오라는 말, 갔다 올게라는 말과 함께 곧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고, 회복도 잘되었다. 수술 한 달 후 검진까지 끝나서 아내는 지금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과속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사고에 과속, 신호위반도 하지 않는 남편이 과속까지 하면서 달려왔던 그때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이 나서 뭉클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과태료 고지서가 나온 것을 보자마자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냈단다.)


그때의 나는 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나 보다. 혹시라도 모르니 한 번이라도 더 봐야 한다는 마음, 곁에 있어야 하는 순간에 못 있었다는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속 딱지를 끊었지만 뭐... 지나고 나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과속은 하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우리 차가 그렇게 잘 달리는 줄 그날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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