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Mar 02. 2023

밥과 꽃, 빵과 시

1.

   새벽, 옛 시창작 문집을 읽는다. 수업 시간에 쓴 글을 모아 아이들이 직접 만든 문집이다. 오규원의 시 <양철지붕과 봄비>를 읽고 어떤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언제나 진실은 틈에 있는 것이다. 언제나 진심은 여기 혹은 저기, 이것 혹은 저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었다. 나는 너에게 시를 적어주고 싶었는데, 그 시를 주고 싶거나 너에게 내 손으로 쓴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시와 글씨 사이, 어딘가 내 진심이 존재하는 그 틈을 주고 싶었다. 

  산다는 것은 삶과 생활 위의 줄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삶 쪽에 가까워질까 고민하고 생활 쪽으로 끌려가면서도 계속해서 삶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에 그 사이를 벗어날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삶으로 가려는 몸부림이어야 한다. 


  아이는 진실과 진심이 고정되고 획일화된 모습으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있다고 말하면서 산다는 것 또한 '생활 쪽으로 끌려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삶 쪽에 가까워질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생활과 삶 사이를 벗어날 수 없는 서글픈 운명 속에서도 우리는 '어찌 되었든 삶으로 가려는 몸부림'을 계속해야 한다고 힘껏 강조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생활 쪽으로 '끌려갈'텐데 그 생활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고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은 생계이고 생존이면서 동시에 당위이고 문법이다. 거기에는 나의 자유의지와 갈망 같은 것이 숨 쉴 곳이 없다. 하여, 아이는 연약한 우리가 생활에 끌려가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생활의 반대편에 삶을 굳세게 놓고 삶도 조금 바라보고 삶으로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밥의 반대편에 꽃을 놓고, 빵의 반대편에 시를 놓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은 3월 2일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학교에서의 삶이 밥과 꽃, 빵과 시가 함께 가는 나날들이길 아직 추운 겨울의 아침에 떨리는 손을 모아 겨우 기도하고 있다. 


2. 

  가수 이적의 <반대편>은 우리가 슬픔과 아픔을 거슬러 빛과 삶의 편으로 다다를 수 있을지를 간절히 묻는 노래이다. 


눈부신 빛의 반대편으로/ 찬란한 삶의 반대편으로/ 파고드는 이 마음에/ 우린 아파하고 있네

앙상한 손을 뻗어 너에게/ 작은 온기를 건네고 싶어도/ 겨우내 굳은 마음이/ 어떤 무게를 더할지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빛의 편으로 삶의 품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그대 편으로 넓은 품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빛의 편으로 삶의 품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그대 편으로 넓은 품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눈부시고 찬란한 삶의 반대편에 있는 어둡고 두렵고 슬프고 아픈 쪽으로 더 많이 끌려가게 된다. 상처는 언제나 오래 살아남아 우리를 내내 아프게 한다. 그런 너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싶어도 나조차 마음은 앙상하게 메말라 굳어져 있다. 오히려 너를 더 아프고 슬프게 할까 봐 주저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나도 슬픔과 아픔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여, 노래는 이렇게 간곡하게 질문한다. '슬픔의 문을 열고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빛과 삶과 그대의 품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러나 또한 이 질문은 노래에서 두 번 반복된다. 여기에는 어떤 선언과 주장보다도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회의보다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해보자고 노래는 말한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빛과 삶의 편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노래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3. 

  3월 2일 모든 새로운 시작의 아침, 나는 당신에게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하고 씩씩하고 간절하게 묻고 싶다.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빛의 편으로 삶의 품으로 그대 편으로 그 넓은 품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요?"    




- 이적 <반대편> https://www.youtube.com/watch?v=OuxKdIYtahA&list=WL&index=1


       


작가의 이전글 올리브 나무에 물을 주는 저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