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옷을 입은 고목나무

내려놓음

by sally


새벽녘 베란다 너머 작은 소음에 잠시 잠을 깼다가 이내 무겁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른 아침 일어나자 어깨와 목의 통증이 심하게 왔다. 일어나려 해도 정수리까지 뻗쳐오는 고통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직 얼굴 신경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평소 근육 뭉친 것만으로도 통증이 극심했다.

눈을 뜨고 하루의 삶을 살기 위해 침대에서 고개를 드는 것조차 이토록 무겁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고개를 가볍게 들고 삶의 무게를 견뎠다는 것은 가면 뒤에 존재 같았다. 얼굴을 받치고 있던 목과 어깨의 무게가 그토록 무거웠던 것임에도 생명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왜 가볍게만 느껴졌던 것일까.



한 달여 동안 구상했던 단편소설을 반나절 만에 초안을 써 내려갔고, 사나흘 거쳐 퇴근하고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뜨고서 겨우 퇴고를 했다. 응모 마감일에 쫓기다시피 하고선 겨우 우체국 가서 빠른 등기로 보냈다. 결국 이번에도 퇴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응모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소설에 집중시키고 몸을 학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허탈했다. 올해 안 하더라도 내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굳이 내년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은, 나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삶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길 원했을 뿐이다.


가볍게 시작했고 아름답게 글을 쓰려고 했던 장편소설도 사회적 이슈나 이데올로기를 너무 반영시켰고, 인간적 욕망에 대한 본질적 문제와 삶의 고통에 관한 것들을 근육이 뭉칠 정도로 너무 무겁게 기록했다. 결국 내 살아온 삶이 그토록 납옷을 입고 다녔을 만큼 무거웠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글의 표현과 기록은 그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 같은 것일 테니까. 내가 살아온 암울했던 시대, 배경들이 나를 짓눌러 소설의 형식을 빌려 기록하며 회한적 삶을 글로써 노래하려 했던 것일까. 결국 소설을 굳이 써야만 했던 나의 밑바닥 본질은 또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숨죽였고 억눌렸고 절망적이였던 시대적, 개인적 삶을 거침없이 토해내려 했던 것일까. 현대인의 명찰을 가슴에 단 나조차도 무거운 것을 거부하면서도.



내 안에는 이미 삶의 쓰디쓴 것들이 위 안에서 머물러 있음에도 다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소화도 안 되는 거친 음식물들을 삼키고 있었다. 쪼그라 든 위는 생존에 필요한 양만큼 원했고, 나는 그 사이 5킬로그램이나 체중이 감해졌다. 몇 년 전 엄마 간병으로 부실해진 체력을 단단하게 채우기 위해 시작했던 필라테스도 못하게 되면서 이곳저곳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안간힘을 쓰며 마라톤 경주자처럼 고지를 향해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사람처럼 그랬었다.





며칠 전, 깊은 잠에서 깨어나보니 나는 겨울 옷을 입고 있는 고목나무가 되어 있었다.

감정과 이성을 가진 존재였던 것 같은데, 움직일 수 없는 고목나무가 되었지. 그것도 한 여름에 털옷과 털모자를 쓰고선 나무기둥엔 등껍질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 그리고 여기가 어디지. 오늘 무슨 요일이더라. 출근을 해야 하는가.

점차적으로 공간과 시간을 쫓아 현실에 가장 가까운 나를 찾아온다. 무엇이 이토록 내 삶을 납덩이처럼 짓누르고 있는가를. 표면적으로 나는 지금 안정되어 있고 평화롭고 도둑방망이처럼 급습할 그 어떤 일도 없다.


현실을 망각한 존재의 의식을 깨운 후 화장실로 가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뭉친 근육의 통증과 함께 최근 볼 살도 빠진 얼굴이 더 초라해 보였다. 하루 중에도 유일하게 내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언제였던가. 내 얼굴은 타인을 위해 존재한 것처럼, 직장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길을 가면서도 스쳤던 그들은 미세한 모든 근육을 움직이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어떤 이미지로 그들 내부에 심었을까.

그랬어, 삶은 슬픈 거였잖아. 잠시 행복한 척, 즐거운 척했을 뿐이었어. 그것은 내가 삶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이유들이었잖아.




오늘도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무거운 털옷과 모자를 눌러쓴 고목나무가 되어있다.

그리고 고목나무에 누더기처럼 붙어있던 상흔의 등껍질을 하나둘씩 고통을 느끼며 떼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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