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쌤 Apr 11. 2024

아버지의 통곡

책장에 꽂힌 오래된 책들을 버리기 위해

살펴보다가 아버지의 통곡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책을 소중히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비닐로 표지를 쌓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50이 되어 보니,

부질없는 행위인 듯하다.

책은 장식용이 아니고, 읽고 버려야 한다.

비닐을 벗겨 버리기 너무 어렵다.

아주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쓴 것을 보니

그래도 젊음은 여유가 있는 듯하다.     

암튼 아버지의 통곡이라는 책이

1992년 2월 20일에 발행되었다.

강산이 몇 번 바뀌었을까?

읽고 버려야지 하며,

책을 넘겼다.     


아버지의 통곡은 등반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사고가 발생할 시점부터

1년이 지난 뒤 무덤을 찾은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이 오래되어 혹시나 검색하였지만,

현재의 시간에는 존재하지 않은 책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통곡의 일부

도대체 자식의 죽음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슬픈 것일까?

난 내 아버지를 묻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자식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묻는 일은 예상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식을 묻는 일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던 어떤 것을 빼앗기거나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을 위해 진혼곡을 작곡해 달라고 의뢰했다.

<레퀴엠: 에릭 월터스토프를 기리며> 1986년 5월 18일 미국 미시간주의 그랜드래피즈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레퀴엠의 일부

죽음의 비밀은 참으로 두렵도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름다운 자를 보며 애통하도다.

지금 무덤에 있는 자,

모양도, 영광도, 생각도 없도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비밀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썩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가?

왜 우리는 죽어야 하는가?    

 

50의 삶의 변화 중에 하나는

결혼식장 방문보다

장례식장 방문 횟수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월 2회는 평균적으로 조문하러 갔다.

죽음?

타인의 죽음은 산 자에게는 그 사람의 몫까지 더 해지는 삶의 의무를 주는 것 같다.     


특히

자식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의 통곡 저자는 자식의 죽음 후 모든 것이 멈춰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새로운 것이 없다.

이해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에 느낌을 알 수 없음을 인정한다.     


자식으로 태어나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에게 정해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50이 되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부모님의 죽음, 나의 죽음, 아내의 죽음, 자식의 죽음, 지인의 죽음 등     


나약한 인간으로서 죽음의 준비의 시작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가기 전,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주어진 이 시간,

부질없는 행위로 인해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     


202431     

참고도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1992). 아버지의 통곡. 서울: 양무리서원

이전 14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