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g 쓸 땐 투지가 있었지
지금 남은 투지는?
크리스마스에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8살 아이에겐 산타가 선물을 주는 날인데 나에겐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전화기도 갑자기 빼앗는 얄궂은 날이다.
사실 4년 6개월 정도 썼으니 제 몫을 할 만큼 했다. 보통크기의 내 손에 착 감기고 고장도 없어서 지금껏 내 손을 거쳐간 전화기 중에서 만족감이 제일 큰 아이였다. 3년 반이 되니까 배터리가 노후했다는 알림이 오고, 비를 조금 맞았더니 단자에 물기가 있다는 알림이 왔다. 신기하게 3년 반 되는 시점부터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씩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유심칩도 인식이 되질 않아 통화 기능조차 상실했다. 문을 연 유일한 대리점을 찾아 적당한 가격에 기존 폰처럼 너비가 넓지 않은 폰은 없느냐고 물었다. 요즘은 다 크게 나오는 추세라고 한다. 한 손으로 문자와 카톡을 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무난하게 쓸 보급형 폰을 장만했다. 스마트폰이 지니는 비슷비슷한 느낌 때문인지 이젠 어떤 폰이 손에 쥐어져도 크게 감흥이 오진 않는다.
나와 함께했던 많은 핸드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어나 처음 가져본 마이크로아이라는 초소형 폴더폰이다. 실버색 바디에 안테나가 쭉 뽑히는 장난감 같은 그 기계를 손에 넣었을 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다 펼쳐도 내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미니사이즈여서 한 손으로는 통제가 안 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과는 달리 내 맘대로 다룰 수 있었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1/8도 안 되는 화면에 문자메시지가 잘려서 뜨는 것 마저도 귀여웠다. ⬇️ 버튼을 눌러야 나머지 문자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게 요즘처럼 바로바로 한 번에 되는 게 없었다. 문자를 상대방이 읽었는지 알 수도 없어서 답장을 받으려면 기다림은 필수다. 요즘은 왜 내 카톡에 답이 없냐고 바로 전화를 할 테지만 그땐 상대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티켓을 사고 주식 거래를 하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최고의 문명 속에 살지만 일일이 발품 팔고 다니던 불편한 2g 시절이 더 그립다. 그 이유는 자리에 앉아서 손가락 한번 튕겨서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하기보다 직접 두 발로 뛰며 세상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20대 시작을 함께한 2g 폰 시절이기에 나이에 맞는 투지가 있었다. 답 문자를 기다릴 줄 아는 투지, 좋아하는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극장으로 향하는 투지, 인터넷 접속을 위해 육중한 피씨본체 전원을 건드리는 최소한의 투지...
2g가 5g가 되기까지 세상은 편해졌는데 내 투지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실물 책을 읽는 투지 하나는 남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전자책은 읽어도 도통 읽은 것 같지가 않다. 덕분에 도서관을 부단히 찾을 수 있는 투지가 여전히 내겐 있다. 감사한 일이다.
#2g#5g#마이크로아이#스마트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