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카에게는 잔소리도 고민된다.

말하지 않는 게 나도 편하다.

by 김이름

조카가 이제 곧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이미 내 키를 넘어선 지는 오래고, 어느새 저렇게 컸을까 대견하다 싶다가도 점점 말수가 줄고,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어느새 한 마디 한 마디가 잔소리로 받아들여지고, 짜증을 내면 순간 하려던 말조차 멈칫하게 된다. 분명, 조카 잘못인데 그 잘못조차도 순순히 인정하기보다는 짜증이 먼저 앞서는 조카를 보면 이게 사춘기인가 싶어 숨을 고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한계가 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내가 어른이니까 어른스럽게 보듬어야 한다고,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냐고, 모르니까 저러는 거라고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점점 이 환경이 힘들어진다. 결국엔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맞을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떠나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조카가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망설이게 된다. 그럼에도 지극히... 의무만 주어지고 권리는 하나도 없는 지금 가끔 숨이 턱턱 막혀온다.


잔소리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조카와 나의 관계가 크게 틀어질 일은 없다. 한 발 내딛기 힘든 더러운 조카의 방은 눈 한 번 감으면 그만이고, 몰래 밤늦도록 게임하는 것도 못 본 척하면 오히려 내 마음은 편할 수 있다. 번번이 지키기로 한 약속을 어겨도 모른 척하면 된다. 그냥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면 오히려 매우 편한 삶을 살 수는 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저 녀석이 나중에 더 힘겨운 인생을 살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을...


분명한 건 내 자식이었다면 울고불고 힘들다는 투정에도 약속 어긴 것에 대해서 확실한 책임을 물었을 것이고, 몰래 게임을 하다 걸리면 가차 없이 인터넷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카에게는 이런 것들을 실행할 수가 없다. 그 녀석의 미래보다 지금 당장 나와의 관계가 더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국 조카의 눈치를 봐야 한다. 감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 그 녀석이 짜증 내지 않도록... 그런데 이게 맞나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내가 어린 시절에 우리 엄마도 나에게 많은 잔소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대들기도 하고, 짜증도 냈다. 그래도 엄마와는 살벌하게 싸웠다가도 뒤돌아서면 다시 그 관계를 회복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모와 조카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 감정이 다치면 부모·자식 관계처럼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무서워 멈칫하게 된다.


매일 하는 잔소리 중에 나갈 때 조카에게 방 불 좀 끄고 다니라는 것이 있다. 물론, 대답은 한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그 방 불을 확인하고 끈다. 학교 가기 전에도, 학원에 가기 전에도 집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어김없이 불을 끄지 않고 나간다. 사실, 내가 대신 조카방 불을 끄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갈등의 씨앗이 되고 만다. 혹시, 내가 엄마가 아니라서 해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조차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난 내 자식이었다면 더 엄격하게 실천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거다.


조카에게 한 번의 잔소리가 나가기 전까지 나에게도 수많은 인내의 시간이 있게 된다. 지켜보고... 지켜보고... 인내하고... 참다가 한 번 잔소리하면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이럴 때면 내가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잔소리를 한 건가? 내가 아직 현명한 어른이 되지 못해 올바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답답해진다.


가끔, 정말로 묻고 싶다. 전국에 계신 조카를 키우는 고모나 이모 그리고 삼촌들에게. 아니면, 손자를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당신들도 진짜 엄마가 아니라서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느냐고... 잔소리를 해야 할 때 어떻게 하겠냐고... 사춘기니까 그냥 지켜보는 게 답이 될까? 그 전에 내가 녹다운 되면 어떻게 하냐고... 모든 걸 체념하고, 포기하게 될까... 사실 그게 제일 두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방학에는 삼시세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