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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4. 2024

제8화 시뮬레이션의 스펙트럼

육신을 벗어난 영혼, 여러 자아의 ‘탄생’

 아내를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눕혔다. 얼굴은 창백했고, 귓가에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낑낑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무스토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뛰어와, 조수석에 눕힌 아내의 다리를 박박 긁었다. "무스토! 뒤에 얼른 타! 빨리 가야 해!"

 나는 불안감과 걱정이 뒤엉켜 요동쳤고, 급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지?’ 사찰을 나올 때까지 스님의 말을 끝내 무시했지만, 머릿속에는 그와의 대화가 맴돌았다. "이레나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돌아봐야 한다?",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그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내는 괜찮다는데,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잖아.’ 스님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마다 핸들에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에 맞춰 발도 더 강하게 페달을 눌렀다. 점점 속도를 높였다. 길 위의 차들을 추월하며, 땀에 젖은 이마를 훑었다. 내 불안한 시야는 거칠게 흔들리는 도로와 터널을 통과했고, RPM 게이지는 끝을 향해 치닫으며, 속도계는 나의 초조함과 공명했다. 이따금 들리는 아내의 무거운 숨소리와 무스토의 헐떡이는 소리가 귓가를 채울 뿐이었다.


 차는 경주의 한가운데,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의 하얀색 건물 앞에 멈춰섰다. 생명의 시작과 끝이 모이는 장소.

 그때 아내가 미세하게 몸을 움직이며 눈을 떴다. 그리고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자기야…. 여기 어디야?"

 "괜찮아? 방금 자기가 또… 변신했다고…. 아니, 변신이 아니라, 그…. 영혼이 육체 위로 막 떠다니더라고! 아니, 연못 위로. 도대체 뭐야, 이거?"

 아내는 차분히 대답했다. "난 괜찮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

 "아니, 병원에 무조건 가봐야 해. 이건 말이 안 돼. 네 상태가…"

 그러나, 아내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조수석에 다시 등을 기댔다.

 "정말 괜찮아. 당신이 조금 더 알게 되면, 이건 아무 일도 아닐 거야. 그냥…. 조금 더 잘래."

 그러다 문득, 무스토를 떠올린 듯, 약간 힘겹게 다시 입을 뗐다. “무스토는 어때? 나 때문에 놀랐을 텐데… 무스토도 잘 챙겨줘. 그는 우리 가족이니까…” 뒷좌석을 슬쩍 돌아보니, 무스토는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아내와 그 작은 생명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숨결을 고르며, 잔잔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을 조금씩 풀며, 다시 도로 위로 차를 몰았다. 이번엔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이후 몇 년을 한결같이 예의주시했으나, 아내는 변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갈이하며 아기였던 무스토가 이제는 듬직하고 견고한 성체가 되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작고 앙증맞던 그는 우람해졌고, 나와 아내를 보호해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발톱은 땅을 디딜 때마다 묵직한 소리를 내고, 눈동자는 신뢰와 충성을 담아 우리를 응시했다. 시간은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흐르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20대 초반에 만난 아내는 핀란드의 차가운 바람을 닮은 맑고 투명한 피부, 흰 눈처럼 밝은 금발, 그리고 하늘색 눈동자가 빛났다. 피부는 부드럽고 윤기가 돌았고,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는 그 자체로도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30대에 가까워진 아내의 얼굴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눈가에 얇게 자리 잡은 주름들은 그녀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을 말해준다. 그 주름은 젊음의 탄력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한층 더 성숙하고 깊어진 인상을 보여준다. 금발은 조금 더 차분한 색으로 가라앉았고, 예전의 해맑기만 하던 미소는 어느덧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로 변했다.

 ‘그나저나, 절에 다녀온 것이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그 꿈이 무엇을 암시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 불가사의한 유체이탈 사건을 겪은 뒤, 아내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안에 있던 무언가—어둡고 무거운 기운들, 혹은 악귀들이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건지. 그래서 순수하고 맑은 영혼만 육신에 남은 건지. ‘시뮬레이션인지 뭐니, 허상이니 뭐니, 이런 건 모르겠고, 사찰의 기운이 아내를 정화하고, 그토록 괴롭혀왔던 무언가를 떨쳐낸 것이리라.’라고 결론을 지었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기에 그날을 떠올리면, 애써 기억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버릇도 들어섰다.


 얼마 전, 아내는 김연수 교수님과 함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을 성공적으로 발표하며, 화려하게 박사 학위를 마쳤다. 그 논문은 수리·수문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로 평가받았는데, 제목은 "복잡계에서의 다차원 흐름 패턴: 지형학적 변형과 비정상 유량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였다.

 전통적인 수리·수문학의 한계를 넘어서, 복잡한 지형 내에서도 다차원 흐름 패턴을 분석하는 내용을 다루었으며, 특히 비정상적 유량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에 걸쳐 변형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인공구조물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구체적으로 연구했다. "흐름"을 하나의 데이터 패킷처럼 취급한 그들의 접근 방식은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복잡한 수치 해석을 통해 자연과 인공 시스템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논문은 학계에서 빠르게 주목받았고, 덕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문적 명성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전에 박사과정을 마쳤다. 우리 부부가 동시에 박사가 된 그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이 세상의 모든 난관을 함께 넘은 것만 같은 강한 동지애까지 피어올랐으니.


 아내에 뒤이어 박사 학위를 취득한 날의 저녁, 우리는 축하 파티 겸 호텔의 고급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했다. 식탁 위에는 비싼 양주와 각종 코스 요리가 차려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고요히 흐르는 도심의 불빛이 보였다.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니, 그녀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오늘따라 눈빛이 왜 이렇게 끈적해?" 그녀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덧붙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나누었다.

 “요즘은 교수로 임용되기가 너무 힘들어….”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박사 후 연구원 자리라도 알아봐야 할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경쟁이 너무 치열해. 우리 둘 다 각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우리 둘 다 학문의 길을 계속 걷고 싶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교수직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학계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아직도 안상국 교수님 밑에서 시청 또는 정부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교수 TO가 날 때까지 여기에 몸담기로 했다. 아내는 김연수 교수님 연구실을 나와서 아직은 방황 중이다. 여러 정부 출연연구소로 서류를 내려다가도 그냥 조금 더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 외에 우리의 일상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무스토를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무스토, 이리 와!" 아내가 활기차게 외치며, 그를 이끌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식사로 간단하게 토스트를 먹었고 무스토를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그리고 저녁엔 종종 부부만의 길거리 데이트가 이어졌다. 핀란드에서 온 그녀는 한국의 빠른 생활 리듬에 능숙해졌다. 거리를 지날 때면 상점마다 들려오는 음악 소리, 한시도 멈추지 않고 풍겨오는 음식 냄새, 그리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등등…. 그 속에서도 유연하고 여유로웠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거나 분식집에서 김밥을 즐기면서도 그 맛이 새롭다기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즐기곤 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한참을 걷다, 집 앞의 단골 카페에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여기는 이제 집 같아, 정말."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미소를 볼 때면, 가끔은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떠오른다. 더 이상 그 웃음을 보지 못할까 봐... 욕실에 들어설 때나 화장실 앞을 지날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묘한 느낌이 들곤 했으니.

 어쩌면 그 거울이, 아직도 무언가 우리를 속이고 있지 않을까? 그 거울 뒤편에 무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루가 별탈 없이 지나가고 평범한 일상을 아내와 함께 지낼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감사했다.


 결국, 주지 스님의 말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그동안 무언가 깨달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가 말한 ‘깨어남’이라는 것이 정말 있었던 걸까?

 수없이 나를 돌이켜보고, 세상을 관찰했으나 별다른 일은 없었다. 세상은 늘 그대로였고, 나는 그저 아내와 함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스님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 자네 자신을 더 돌아봐야 할 걸세. 모든 것은 아내가 아니라 자네가 깨달아야 할 몫이야."

 더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그 ‘깨달음’을 포기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 스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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