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사찰에 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의식'(4)
무심한 듯 그 자리에 서서, 한 폭의 그림처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스님. 어느새 우리 앞에 다가와 목탁을 두드렸다. ‘톡’, ‘톡’, ‘톡’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차분한 목소리로 불경을 외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목탁 소리가 "텅, 텅, 텅, " 다시금 천천히 이어지자, 아내의 몸에 깃들었던 영혼이 조용히 돌아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충격에 몸을 떨었다.
"스님….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님은 여전히 고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양자역학과 불교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불교의 연기(緣起)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죠.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얽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입자가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 그것이 곧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법칙과도 같지요."
스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서 말했다. "또한, 양자 중첩은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의식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존재할 수 있듯이. 이레나 씨의 경험도 이런 양자적 세계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물리적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가 겹쳐져 있다는 것을 ‘불교’와 ‘양자역학’이라는 각각의 방식으로 설명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스님의 말을 뒤로한 채, 성급히 아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연못의 돌 위에서 차갑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심장에 귀를 갖다 대었다. 둥… 둥… 둥…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을 쓸어내린 뒤, 그녀를 등에 업고 숙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여기서 나가야 해!"라고 외치며, 허겁지겁 차 키만 챙겼다. 손은 떨렸고, 발걸음은 분주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빨리 사찰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 순간, 요사채로 온 주지 스님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거울 앞에서도… 보통 이러지 않나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확인하려 묻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지금껏 무시하고 싶었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불교든, 기독교든, 유대교, 이슬람교든… 표면은 달라도, 정신과 영적 믿음은 같은 하나의 흐름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주의 진리를 믿는 자들은 '우주'라 부르기도 하지요. 이름과 호칭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본질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허공에 떠도는 무의 실체일지라도… 각자가 붙잡은 이름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리는 그 모든 형상을 넘어선 무한한 것입니다."
스님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아내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군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처럼. 부처님의 진리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었네만. '모든 것은 무상하다'라는 말씀은 곧, 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가 지나가는 한순간일 뿐, 본질은 그 너머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갇힌 채로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어요. 참 신기한 일이야. 당신의 아내는 이미 그 벽을 넘어 버렸으니."
스님은 내 등 뒤에 업혀있는 이레나를 한번 바라본 뒤,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네의 아내는 이상이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녀가 아니라, 당신입니다. 재동 씨도 이제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할 겁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묶여 있지 않으니, 당신도 그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나는 그 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 아내는 지금 정신을 잃었는데,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니요! 도대체 저희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혹시, 제 꿈에 나타난 그 스님인가요?!”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사찰의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졌고, 스님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꿈속에 스님…? 혹시 그날 사찰에 다녀왔습니까? 그렇다면, 그와 관련된 꿈을 꾸었겠지요. 스님들의 외형은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인식이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꿈에서 나타난 그분을 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날의 경험이 재동 씨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었을 것이고, 결국 미래사, 이곳까지 이끌어 온 것일 뿐.
설령, 그 꿈속에서 본 사람이 내가 된들, 아닌 들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사전에 재동 씨가 그렇게 인식했기 때문에 어느 답변을 드려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실 겁니다. 중요한 건 아까 말했다시피, 자신을 더 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재동 씨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그리고 아내의 상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병원에 가도 소용없을 겁니다.”
나는 스님의 말을 무시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아내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냈다. 손가락 끝으로 리모컨을 누르자, 멀리서 짧은 신호음과 함께 차가 눈빛을 번쩍였다. 엔진이 점점 고조되며, 고요한 사찰의 공기를 가로지르듯이 울렸다. 뛰어가는 도중, 고개를 천천히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와서 이레나만 더 이상해졌네…. 그 꿈을 괜히 꾸었어. 도대체, 뭐가 더 나아진다는 거야?"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이 사찰이 아내를 진정시키고 회복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이곳에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