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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4. 2024

제7화 사찰을 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식'(3)

 둘째 날 새벽 4시 반.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채, 요사채 내부에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무얼 한다고….” 엘레나는 간이침대에서 뒤척이며 불평했다. 보라는 피곤한 얼굴로 대꾸했다. “하고 나면 뭐, 깨달음이 있을지도 몰라.” 

 새벽 예불을 위해 사찰의 대웅전으로 향했다. 예불은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연스럽게 평화가 깃들었다. 예불이 끝난 후, 사찰에서 울력이라는 공동 노동에 참여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며, 한바탕 유머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내가 살면서, 청소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 뒤로 이어진 발우공양 시간. “이렇게 조용히 먹는 것도 참 색다르네.” 

 오후가 되자, 우리는 각자 소원 쪽지를 적어서 등에 달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다 행복하길"이라는 짧은 소망도, “내 소설이 대박 나길!”이라는 엘레나의 꿈도 적혀 있었다.

 차담 시간에는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그날의 피로를 풀었다. 스님은 조용하고도 깊이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하죠. 소원을 적는 순간,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미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차를 마시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둘째 날은 평화로움과 성찰 속에서 잔잔히 흘러갔다.


 사찰에서의 세 번째 아침. 모두 마음을 정리하고 법당에 조용히 들어갈 준비를 마쳤지만, 엘레나는 익숙지 않은 사찰 예절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먼저, 법당 정면의 중앙 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그녀를 본 주지 스님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항상 옆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기본예절을 몰랐던 그녀는 그저 무심하게 당당히 걸어 들어갔고, 경건한 분위기를 흐트러트렸다. 판승이 옆에서 속삭였다. "저기, 중앙 문은 안 된다고 했잖아." 하지만 엘레나는 이미 법당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리고 더 큰 실수가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녀는 법당 안에서 쿵쿵 걷고, 이미 경을 읽고 있는 불자의 바로 앞을 지나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뒷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엘레나는 박물관을 구경하듯이 불상 앞을 당당히 걸어간 것이다. 이에, 참선 중이던 몇몇 불자들이 살짝 눈을 떴다. 거기에 더해, 복장 역시 문제였다. 엘레나는 몸에 딱 맞는 돌핀 팬츠 비스무레한 것을 입고 있었는데, 이를 본 스님은 고요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여기에서는 좀 더 단정한 복장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엘레나 큰일 났네." 보라는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이미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찰에서 돌핀 팬츠라니… 참 특이해." 아내 역시,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던 것 같다. 엘레나는 당황한 얼굴로 스님께 정중히 사과했고, 스님께 한 소리 들은 뒤로는 더 조용해지길 기대했건만, 어디서든 존재감을 터뜨리며, 우리의 템플스테이 일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4일 차, 아이들은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공무원과 공기업에 재직 중인 보라와 판승은 더 머물고 싶었지만, 1주씩이나 연가를 낼 수는 없었다며 하소연했다. 나는 그들이 떠나기 전, 조용한 곳으로 보라를 불렀다. 사찰 뒤편에 작은 대나무 숲, "혹시 기숙사 생활할 때, 이레나가 거울을 보며 소리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어?"

 보라는 눈을 살짝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적은 없었어. 이레나가 좀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긴 하지만, 거울을 보며 소리친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우리는 잘 지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운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조용히 헤어졌다.

 한편, 엘레나는 그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절도 좋긴 한데, 좀 맛있는 거 좀 먹고 싶다!"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풀떼기만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콩고기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육류를 이길 수는 없네!" 입맛을 다시며, 더 시끄럽고 복잡한 클럽이나 밤거리로 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3일 동안 너무 즐거웠다."라며 밝은 미소를 남기고는, 아내에게 가벼운 포옹을 건넸다. "여러분은 계속 ~ 평온한 시간 보내시고!"


 사흘간 함께했던 친구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며, 우리 부부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5일 차 새벽 5시, 불경 소리가 사방에 울리며, 반복적인 진동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쉬는 시간이 찾아온 오전 7시쯤, 아내는 조용히 연못가로 걸어갔다. 신발을 벗고 물가에 앉아 물의 흐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을 보는 순간, 자동으로 유량을 셈하는 습관이 뱄다. 

 그녀는 조심스레 수면을 살피며 흐름을 측정했다. 그때 물이 간헐적으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휘돌았다. 유속을 계산하며 적분을 마친 순간,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물이 흘러가는 방향과 속도가, 두 개의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유체역학의 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이었다. "이건 마치…. 양자 중첩 현상 같은데?" 그녀는 중얼거렸다. 양자역학을 전혀 모르는 이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명백한 '버그' 같은 흐름이었다. 물이 흐르다가 갑자기 멈추거나, 같은 공간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는 듯 보였다. 얽힘처럼, 물의 한쪽 끝이 다른 끝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 그녀는 폭우가 내리던 날뿐만 아니라, 절 안에서도 자연의 법칙이 무너지는 것을 인식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내가 실감하고 있는 이 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른 차원과 연결된 거야."


 그 순간,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연못 위에 떠 있는 물방울처럼 영혼은 육신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연못가에 앉아있었지만, 의식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 없는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두 가지 현실이 겹쳐졌다. 하나는 명확하게 보이는 현실, 다른 하나는 물의 흐름처럼 잡히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녀는 이제 '변신'이 아닌,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있었다. 

 유체이탈을 시작하자,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내의 몸이 그대로 앉아있는데, 영혼이 똑같은 형상으로 몸 밖을 떠다니는 것이 내 눈에도 명확히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가던 중 너무 놀라서, 그대로 땅에 철푸덕 자빠지고 말았다. 철썩 땅에 엎드린 채, 눈을 부릅뜨고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아내의 몸에서 빠져나온 그 형체를 뚫어지도록 바라봤다. "이레나? 이레나?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녀의 영혼은 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고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동,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이 세계의 겹쳐진 진실이야.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독립된 실체가 없다고 말해.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로 모든 입자는 서로 얽히고, 관찰할 때 상태가 결정되지. 나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어."

 그녀의 영혼이 고요하게 연못 위를 가르며 말을 이었다.

 "중첩 상태란, 우리가 생각하는 이 현실과 동시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의 가능성을 의미해. 불교의 윤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결되는 이 무수한 중첩의 흐름과 같아. 여기서 내가 느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식이야. 이 몸이 사라지더라도 의식은 얽혀서 계속될 거야.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 양자 얽힘처럼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가 되는 거지."

 나는 여전히 넋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그녀의 영혼이 하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주지 스님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다. ‘아내의 유체이탈이 그에게는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는 건가...’ 스님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말했다.

 

 "오온이 공하다(五蘊皆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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