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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4. 2024

제7화 사찰에 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의식'(2)

 판승, 보라, 엘레나가 차례대로 줄지어 도착했다. 여자들은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는 기쁨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잔뜩 들뜬 표정으로 방방 뛰었다.

 "오 마이갓! 나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 엘레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이레나에게 달려가 안았다. 보라 역시 빠지지 않고 뒤에서 끼어들며, 세 여자가 하나의 작은 폭풍을 일으켰다.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그녀가 웃으며 말하자, 엘레나는 "Oh girl, it’s been way too long!"이라며 손뼉을 쳤고, 판승은 특유의 차분함으로 다가왔다. "나야 뭐, 늘 바쁘지. 근데 요즘 조금은 안정됐어. 드디어 정직원 됐거든!" 그 말에 모두 환호하며 축하를 보냈다. "와, 진짜 대박!"

 보라는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 난 요즘 노잼이야. 공무원이라 안정적이긴 한데,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해. 진짜 지금이 그 ‘노잼 시기’가 맞는 거 같아."

 엘레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뭐, 책은 계속 내고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클럽이 더 재밌어! 요즘 완전 거기 빠져서 살잖아." 흥에 겨운 표정으로 춤을 추듯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사찰의 한구석에서 도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근데, 진짜 서울에서 경주는 너무 멀지 않냐?” 보라가 조금은 찡찡거리듯 말했다. 이에 이레나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맞아,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은데, 좀 더 가까운 데서 만날 걸 그랬어." 그 사이에서 무스토는 꼬리를 흔들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만 같았다.


 경주의 한적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사찰, 미래사는 불국사의 명성에 가려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이다. 규모는 작지만, 그 속에 담긴 평온함과 고요함은 불국사의 웅장함과는 다른 면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경내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전각들이 어우러져 있고, 자연 그대로의 산세와 조화롭게 섞여 있어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산 위쪽으로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아래로 내려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멀리 펼쳐진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은 동양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가 머물 요사채는 스님이 간략 설명해주셨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니 그 아늑한 매력이 더 돋보였다. 나무 기둥으로 세워졌으며, 입구 왼편에는 단출한 침상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얇은 전통 모포가 접혀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작은 정원이 보였다. 정원은 연못과 함께 돌로 깔끔하게 정돈된 길, 각종 소나무와 대나무가 심겨 있어 사찰의 분위기를 더했다. 방 한쪽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다실도 마련되어 있다. 옅은 나무 향이 스며든 찻잔과 다기들. 방 중앙에는 낮은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반야심경이 쓰인 두루마리가 있었다.

 

 한편,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온, 엘레나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녁엔 바비큐 파티 어때? 우리 고기 좀 구워 먹자!” 보라도 덩달아 흥분해, “좋지! 삼겹살 구워서 먹으면 딱 맞는데!”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 순간, 지나가던 동자 스님이 아이들의 말에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그리고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여기서 바비큐 파티를 하시겠다고요? 이곳은 불법(佛法)의 집입니다. 우리 절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오계(五戒)를 따릅니다.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지켜야 하거늘, 육류라니요! 그리 하시면 법당의 삼귀의(三皈依)가 혼탁해질 수도 있습니다.”

 엘레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삼귀의가… 뭐라고요?” 동자 스님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눈을 반짝이며, “삼귀의는 부처님과 법, 그리고 승가를 귀의한다는 뜻이지요. 부처님을 공경하고, 법을 따르며, 스님들을 존경하는 것인데…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가 이 신성한 곳을 흐리게 한다면, 삼귀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게 됩니다.”

 아이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엘레나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그럼… 그냥 채소 바비큐?"

 스님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채소는 불법을 어지럽히지 않으니까요."

 저녁 무렵, 공양 시간이 되어,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무스토는 어리둥절한 이리저리 킁킁대며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고, 비로소 모두 자리를 잡은 뒤 스님이 공양을 시작했다.

 "와, 이거 완전 비건 파티네!" 엘레나는 익숙하지 않은 채식 식단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친구들은 그녀의 적잖은 투덜거림에 웃음을 터뜨렸다. 공양이 끝나고 예불 시간이 되자, 주지 스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제 예불 시간입니다. 그리고 108배를 드리며, 각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08배라니… 108번을 절하라는 거야?” 보라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거 진짜야?" 엘레나는 그 말을 듣고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Yes! Just think of it as leg day. We’re basically getting a full workout!"

 무스토는 우리를 따라 하는 건지, 우리가 한 번 고개를 숙이면, 몸을 낮추고 꼬리를 흔들며 좌우로 움직였다. 우리가 다시 절을 하면, 앞다리와 뒷다리를 번갈아 가며 땅에 몸을 붙였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하나둘씩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 판승은 그 광경을 보고 속삭였다. “야, 무스토가 절하는 거 봤어? 얘는 이미 도 닦은 강아지야!” 보라는 숨을 죽이고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강아지들한테도 전생이 있다는 거 아닐까? 이러다 무스토가 먼저 깨우침을 얻겠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잠시, 막상 108배가 계속되자 판승은 “아이고, 이게 몇 번째야…”라고 중얼거렸고, 보라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게 내 새로운 도전인가? 108배 완주? 인스타 각이다.’

 명상 시간이 되자, 모두 자리에 앉아 스님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엘레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Are we supposed to be totally quiet now? Like…. can't even whisper?” 그러자 판승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응, 조용히 안 하면, 스님한테 회초리 맞을 거야.” 엘레나가 어깨가 들썩였다. "Okay, okay! I’m focusing…. seriously focusing now!"

 스님의 차분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마음은 항상 흔들리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명상입니다. 그저 마음의 흐름을 바라보세요."


 요란스러웠던 첫날의 늦은 저녁, 요사채에 모여 앉아 추억을 나눴다. 차츰 어둠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억나? 우리 체육대회 때, 심판에게 항의하려고 골대 옮겼던 거?" 아내는 조용히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의 향수를 음미했다. 캠퍼스에서 나눴던 수많은 대화와 고민, 그리고 함께 웃었던 순간들…. 실컷 떠든 후, 침묵이 흐르자 그들은 모두 각자의 침상으로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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