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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4. 2024

제7화 사찰을 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식’

그날 오후, 나는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아내와 함께 1주일간 휴가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들은 흔쾌히 허락하며 "쉬고 돌아와. 연구도 중요하지만, 삶이 더 중요하지"라며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말에 이레나랑 사찰에 다녀올 건데, 너도 같이 갈래?" 곧, 무하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거 정말 가고 싶은데…. 현장에서 휴가 내는 게, 여간 쉽지 않아서 말이야. 이번엔 좀 힘들겠어."

 "알겠어. 다음에 시간 나면 꼭 같이 가자." 곧이어 판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주말에 시간 어때? 우리 사찰로 잠깐 나들이 가려하는데."

 "좋지! 요즘 좀 답답했는데, 자연 속에서 좀 힐링하고 싶어. 중문에서 시끌벅적하게 놀던 때도 좋았지만, 요즘은 조용한 게 좋더라고."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럼 정해졌네, 토요일에 보자."라며 통화를 마쳤다.

 

 이레나 역시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라, 오랜만이다. 우리 사찰 나들이 가는데 너도 올래?" 보라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찰? 와, 너무 좋겠다! 최근에 자연을 많이 못 즐겼는데, 가고 싶어. 거기 정말 좋다면서?"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응, 무스토도 같이 가. 우리 함께 재밌게 보내자." 그리고 엘레나와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그녀만의 흥겨운 에너지가 뿜어나왔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아내의 수화기에서 여기까지 들려왔다.

 "Hey girl! What's up? I can't believe it's you! What’s poppin'?"

 아내는 웃으며 답했다. "Hey, El! Guess what? We're planning a temple stay this weekend. You wanna join us?"

 엘레나는 곧바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A temple stay?! Oh my God, hell yeah! That sounds dope! I’m in, one hundred percent! I mean, who wouldn’t wanna go? It's gonna be lit!"

 이레나는 그 열정적인 반응에 더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통화했다. "Haha, I knew you'd love it! We’ll get some zen, meditate, and just chill in the mountains."

 엘레나가 더 흥분하며 말했다. "Girl, this is exactly what I needed! Some peace, nature, and like, real spiritual vibes. You know, I've always been about that ‘good energy’ thing! Can’t wait to soak it all in!"

 "Great! We'll meet on Saturday, then," 이레나는 말했다.

 "Bet! See you then, babe. I’m so hyped! It's gonna be amazing!"


 우리는 새벽부터 경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챙긴 짐은 무겁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꿈속에서 본 그 스님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아내, 이레나는 핀란드 출신답게 불교와 거리가 먼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경험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지금 나에게 설명하려고 입술을 움직이기 직전이다. "핀란드에서는 종교가 세 가지로 나뉘어 있어. 정교도, 개신교, 그리고 토속신앙. 불교는 사실 낯설어."

 아이들이 오기 전, 우리는 주지 스님을 만나 뵈었다. 그의 눈빛은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스님과 비슷했다. 그는 우리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외국 손님이 오신 것을 보니 참 반갑습니다. 반야심경을 깨치러 오신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 오시다니 참으로 의미가 깊네요."

 "세상은 많은 이들이 그저 눈에 보이는 물질로만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진리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깨달으려면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요."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아내는 스님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늘 자아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그 답을 찾으려는 듯했다. 스님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 고통받지요. 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아내가 탐구하고 있던 시뮬레이션 이론과 묘하게 비슷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지요. 서울에서 오셨죠? 아무튼,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앞으로 1주일 동안 머물게 될 장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앞서가며 두 손을 천천히 모았다. "여기가 우리 사찰의 선방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할 수 있는 곳이지요. 이곳에서 선정에 드는 법을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안내하는 길은 고요하고도 아름다웠다. 돌길 양쪽에는 오래된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그 아래로 낮게 깔린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스님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손짓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는 법당입니다. 아침마다 여기에서 예불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자연과 하나 되는 법을 배우고, 내면의 평안을 찾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아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워,"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쪽이 여러분이 묵으실 요사채입니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머물면서 세상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자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레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동양의 아름다움에 한껏 빠져들었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너무나 잔잔했다. 요사채가 고요했던 것도 잠시, 12시가 되자마자 공기는 왁자지껄한 사람 냄새가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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