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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3. 2024

제6화 자아란 무엇인가?

자유의지의 '허상'(4)

 나는 결국, 아내를 진정시켜야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의사의 조언대로 애완동물을 키우기로 다짐했다. 핀란드에서 자주 키우는 강아지를 찾던 중, 라프훈드(Finnish Lapphund)를 선택했다. 이 견종은 북극 근처에서 순록을 몰던 강아지로, 추운 기후에 적합한 견종이었다. 이 녀석은 놀랍도록 사랑스럽고 온순한 성격을 지녔지만, 동시에 매우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개로도 유명하다. 핀란드에서 인기가 많은 이 강아지가 핀란드에서 온 아내와도 궁합이 맞을 거로 생각했다.

 아내 역시 나의 제안에 만족스러워하며, 함께 강아지를 위한 물품들을 준비했다. 이름은 “무스토(Musto)”, 검은색을 뜻하는 단어이며, 따뜻한 가족의 품에 어울린다며 아내가 지어줬다.

 가정 분양받는 과정은 간단했다. 라프훈드를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브리더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마침내, 아내와 함께 강아지를 데려오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이른 아침부터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었고, 나는 아내와 함께 양육자의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자, 중년의 여성이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라프훈드를 20년 넘게 키워온 베테랑이었다. 그녀는 밝은 웃음으로 "라프훈드를 처음 키우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 아이들은 충성심이 강하고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애정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내의 동공은 커다래졌다. 여러 마리의 작은 강아지들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강아지들 사이에 앉았고, 그녀는 우리에게 주스를 내다 주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한 마리를 만지자, 주인이 말했다. "이 녀석은 조금 특별합니다. 가장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놈이지만, 사람과의 교감도 무척 깊어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눈빛도 가지고 있죠."

 어두운 깊은 밤처럼 까만 털이 그의 온몸을 덮고 있었으며, 그 털은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며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그리고 눈은 단단한 사파이어처럼 푸르고도 날카로웠다. 수컷이었고, 체형은 새끼 때부터 단단하고 유연한 근육을 연상케 했다. 그 푸른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했다. 아내는 그 순간 무언가를 느낀 듯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로 할게요, 왠지 이 아이가 우리 집에서 행복할 것 같아요."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이 아이야? 다른 아기들도 귀엽잖아."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이 아이가 나를 먼저 선택한 것 같아서."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아내분의 직감이 맞습니다. 라프훈드는 보통 가족을 선택하죠. 저 녀석도 분명, 당신들을 선택한 거예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아내는 무스토를 안고 편안히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아내는 무스토에게 거의 전념하다시피 하루를 보냈다. 출근하기 전, 아침이면 이레나는 마치 아기를 대하듯, 작은 무스토를 품에 안고 산책하러 나갔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기에, 어느새 이 작은 생명체는 우리 삶에 빠르게 스며들 수 있었다. 산책을 다녀온 뒤, 근처 강아지 유치원으로 그를 보내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데려와 목욕시키고 털을 빗으며 깨끗하게 관리했다. 처음에는 강아지를 어떻게 목욕시켜야 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무스토는 물이 싫은지 언제나 몸부림을 치며 여기저기 물을 튀기기 일쑤다. "얘가 대체 어디서 이렇게 힘이 나는 거야?" 아내가 따뜻한 어조로 투덜투덜하며 강아지를 안을 때면,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무스토는 아직 배변 훈련이 덜 되어, 집 안 여기저기에 작은 실수를 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거실에 작은 웅덩이가 자주 생겼다. 아내는 바닥을 치우며, "이 아이는 우리 가족이니까, "라고 속삭이며 그를 다정하게 안아 올렸다. 그가 침대 아래로 숨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면 이레나는 그를 부드럽게 불러내어 쓰다듬고, 때때로 그의 작은 귀를 살짝 만지며 말을 건넸다.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무스토?"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내의 표정은 생기가 돌았고, 집안은 예전처럼 평온함을 되찾았다. 특히, 강아지는 아내 곁에서만큼은 유난히 차분했다. 그러나, 그 거울 앞에만 서면 다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본래의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나운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그 검은 털이 작은 전류가 흐르는 듯 바싹 서고, 꼬리는 낮게 깔리면서도, 눈빛은 결코 두려움 없이 상대를 주시했다.

 무스토가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이레나는 평소처럼 욕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욕실 쪽으로 달려가는 ‘우다 다다’ 소리를 들었다. 거울 앞에 멈춰서, 다시 수리한 그 거울을 향해 짖고 있다. ‘으르렁’과 함께 짖는 소리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무언가를 경고하는 듯한 울림이 감돌았다. 나는 무스토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거기 뭐가 있니?” 그 녀석은 내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더 크게 짖었다. 짖음은 보이지 않는 경계를 지키려는 것처럼,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긴 울음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 거울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무스토가 온 뒤로, 아내는 변신하지 않았다. 강아지가 집에 있던 덕일까.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우리는 무스토를 데리고 계룡산 근처로 나들이를 떠났다. 맑은 하늘 아래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사찰이 있는 방향에서 은은한 향내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왔다. 무스토는 갑자기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더니, ‘휙’하고 그 냄새를 따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레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 옆에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터뜨렸다. "저기 불교 표시 좀 봐. 멀리서 보면 나치 심볼처럼 보이지 않아?"

 나는 눈을 살짝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역시 유럽에서 온 여자야."

 그녀는 다시 한번 가볍게 웃으며, 내 팔짱을 끼고 사찰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아내의 모습은 잠시 나를 안도하게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이 향, 참 좋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산속을 메운 나무와 꽃향기에 집중하더니. "이게… 꽃향기 아니라 절에서 흘러나오는 향인가?"


 사찰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무스토가 먼저 뛰쳐나가며 절 앞뜰을 활기차게 누비기 시작했다. "녀석, 또 장난이 시작됐군."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쿡쿡 웃었고, 나는 그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매우 반가웠다.

 사찰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니, 어떤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가벼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무스토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참 맑은 기운을 지니고 있군." 스님은 곧 다가와 무스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찰 사이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니, 그동안 찌들었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한 법당에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내는 사찰 앞마당의 작은 연못을 보며 "여기, 이 물은 고여 있는 걸까? 아니면 흘러가는 걸까?"라고 묻는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어섰다. 그 질문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라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이중적 무게가 실렸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기 전, 작은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아내는 향긋한 차의 향을 맡으며 "우리가 뭔가 중요한 걸 알아내기 직전인 것 같지 않아?"라고 속삭였고, 그 말도 내게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날 밤, 사찰을 다녀와서인지는 몰라도, 알지 못한 스님이 꿈에 나타났다. 그 스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의미가 서려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그러나 직접 말을 하지 않는 그 적막함.

  

 꿈에서 깨어난 나는 침대 옆에 누워있는 이레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한결 평온했다.

 출근하기 전, 아내와 토스트를 먹으며, 이 스님의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 말이야."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살며시 웃더니, "그럼, 템플 스테이 해보는 게 어때?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적이 있어."라며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 제안은 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그래!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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