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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Oct 03. 2024

제6화 자아란 무엇인가?

자유의지의 ‘허상’(3)

 의사의 마지막 답변은 예상 밖이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는 불안감은 감출 수 없었다. 병원을 나서며,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것도 꽤 느리고 무정한 말투로.

 "자기가 원하는 답은 없었던 것 같네."

 "그래. 얼른… 집에 가자."


 다음 날, 집안은 조용했고,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욕실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날카롭게 퍼져 나왔다. 그 소리는 물결처럼 벽을 타고 온 집안을 울리며, 한순간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동반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을 덮으며 흩어지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고, 그 섬뜩한 파열음이 뇌리를 치는 순간, 잠은 번쩍 달아났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 시계를 확인했다. 얇은 바늘이 무심하게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정확히 오전 7시 2분이었다. 숫자들이 서로 맞물려 흐르는 가운데, 화장실 달려가서 문을 열자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내가, 내 아내가…. 거울 앞에 서서, 손에 들린 물건을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는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는 듯, 미친 듯이 흔들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속임수 거울이야! 이건 진짜가 아니야!"

 그녀의 손이 다시금 거울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달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이레나! 제발, 그만해!"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몸을 비틀며 거울에 집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는 거울 앞에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녀의 손에서는 작은 유리 조각들이 뚝뚝 떨어졌고, 바닥에는 이미 핏자국이 묻어나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수첩을 집어 들고, 아내의 행동을 적기 시작했다. 

‘속임수 거울. 변신. 7시 2분.’ 

 적어 내려가는 내 손도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찬장에서 꺼내어 무의식적으로 병뚜껑을 따고, 그대로 컵에 따랐다. 그리고 말없이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두 모금, 목을 타고 넘기는 알코올의 불에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순간적인 안도감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불안감과 피로가 없어질 리 없었다. 또 한 모금을 삼키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 속에 가려진 내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또다시 술잔을 기울이려는 순간, 아내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를 닦아야겠어."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욕실 거울은 아직도 부서진 상태였고, 파편들은 여전히 바닥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레나, 그 거울 부서진 거 안 보여?"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칫솔을 집으며 무심히 대답했다. "응, 보여. 그런데 왜?"

 "왜냐니? 거울이 부서졌잖아. 유리 조각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는데, 그게 이상한 거 아니야?"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여전히 차분했다. "부서졌다고 의식하니까 이상한 거지. 무의식의 상태로 돌아가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에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내가 알던 이레나는 이제 정상의 범주 안에 있지 않다. ‘이 여자는 일반적인 정규분포에 속하지 않아.’ 의사가 돌팔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1주 후였다. 그날도 무언가 어긋난 느낌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출근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욕실에 있었고, 나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욕실에서 들리는 속삭임이 유난히 불안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욕실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문틈으로 들리는 소리는 분명 아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가 이상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문을 살짝 열어봤다.

 아내는 그 부서진 거울 앞에 서 있다. 마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고정된 채, 그 파편 속을 응시했다. 그리고 "네가… 진짜 통제자였구나, 그동안 네가 나를 조종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거울 속에 대체 무엇이 있는 거지? 아내의 표정과 태도는 날 점점 더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레나…"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듣지 못한 듯했다. 아니, 아예 듣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그녀는 거울 속과 대화를 계속했다.

 "모든 게 네 뜻대로 흘러갔어," 그녀는 거울에 속삭였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이 현실… 다 네가 만든 가짜였지."

 거울은 여전히 깨진 그대로였고, 그 파편 속에 왜곡된 이미지들이 어지러웠다. 한편으로, 그 파편 하나하나가 다른 세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울 속에서 기이하게 흔들리는 내 모습이 보였고, 그것도 내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그 거울 속 '나'는 점점 더 실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아내는 거울 속의 그 '나'와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이레나! 그만둬!" 그리고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가 점점 그 존재에게 휩싸여가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레나…" 나지막이 내뱉은 내 목소리가 너무 작고 나약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 속에서 아내를 찾을 수 없었다. 오늘의 그녀도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벌어졌다. 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해진 각본을 따르는 배우가 된 것처럼. 아내의 변신, 부서진 거울 속 또 다른 나, 모든 사건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나의 과거와 미래는 어땠을까?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이 나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의심이 들었다. 이레나와의 첫 만남, 결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쌓아온 기억. 그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결과였던가? 누군가가 나를 지구에 배치하고 우주 속 게임의 캐릭터처럼 또는 NPC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건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은 뇌가 일으킨 환각이고, 사실은 거대한 프로그램 일부였던 것은 아닐까.

 ‘의지란 무엇인가?’ 아내의 이런 질문은 예전에 나도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철학자들의 고전적인 논쟁거리였고, 누구나 한 번쯤은 던져볼 법한 질문이지만, 그 답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이제 이 질문은 철학적 호기심보다는 실존적 공포로 다가온다.

 ‘자아는 무엇인가?’ 자아 즉, 에고가 허상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이레나가 변해가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 거울 속 존재가 내 삶을 예견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더욱 확신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그녀의 의지로 인해 일어나는 것도, 나의 의지로 인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상황을 조종하고 있었다. 아내가 아니면, 그것은 분명 나에게 짜인 각본이었다. 이 생각은 머릿속을 파고들어 조금씩 나를 갉아먹었다. ‘나는 과연 나인가?’


 거울이 부서진 지 무려 2주가 지나서야,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무엇인가 마비된 듯, 그저 그 거울을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스위치를 켠 것처럼. 그 거울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공을 부르기까지는 또 하루가 걸렸다.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수리 전문가가 도착했다. 그는 부서진 거울 앞에 서서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식으로 부서진 유리는 처음 보네요." 

 "어떻게 부서진 건가요?" 

 그는 손가락으로 부서진 거울의 가장자리를 가리키며 천천히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유리가 깨질 때는 충격의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금이 가죠. 그런데 이건…. 각도와 형태가 이상해요. 마치 안에서부터 어떤 힘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는 거울 조각 중 하나를 손에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30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이런 형태의 깨짐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음……." 거울에 남은 몇 조각이 여전히 붙어있었지만, 그 경계는 너무나도 흐릿했다. 그 흐릿한 경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에 있는 듯, 거울 자체가 무언가 잘못된 차원과 연결된 것 같았다. 유리 공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서는 말이죠. 어떤 설명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지금 갈아드리겠습니다."

 그 깨진 틈 사이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누군가와 교차하고 있는 것처럼, 그 흐릿한 경계는 점점 더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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