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첫 발령지는 시청 안에 있는 토목직들이 주를 이루는 건설관리본부였다. 이 부서는 시민들의 편리 시설인 도로개설과 확장 목적으로 사업을 발주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계속되는 설계변경과 실정보고 등 잡다한 것들이 많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시공사를 감독하며 효율적으로 예산이 쓰일 수 있도록 관리하는 보직으로 있었다. 실질적 토목 기술을 다루기보다는 예산이 어떻게 변경될지 시공사가 분석한 기술적 검토를 포함하여 보고서 작성이 내 업무의 주를 이루었다. 현장에 가서 감독할 때는 시공사에 있던 2년 경험이 크게 도움 되었지만, 공무원이 첫 직장인 동기들은 대학에서 배운 내용과 실전 사이의 괴리감을 조금 느끼고 어려워했다. 차후 말하겠지만, 공무원 일들은 전문성이 높지 않다. 기술직을 제외한 내 동기들은 물론 행정직 공무원들이 가장 많았고, 처음부터 동사무소에서 많이 일했다.
우리가 공무원이 될 때 사회적으로 공무원 붐이 심하게 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동생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더 선호했지만, 우리는 국가기관을 더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상 공무원을 덜컥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노량진에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노량진 컵밥과 공단기는 뉴스나 기사에 흔히 나오는 단어였다. 그만큼 인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심지어 9급 중에 sky가 합격자의 5%는 차지하는 괴상한 시대였다. 행정직 9급들은 중경외시 학벌 이상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문과생들이 얼마나 취직하기 힘들면 9급을 볼까?라는 생각을 당시에 많이 했었다.
물론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금방 그만두고 전문직 시험을 보러 가곤 했으나, 학벌 높은 사람들이 9급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이유는 당시에는 인기가 상당히 많았고 누구도 왜 공무원이 되려는지 구체적인 이유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준비했기 때문에 몇 년간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퇴사 붐도 결국 같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사기업과 다른 점은 그 들은 더욱더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물론 회사원이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크게 2가지에 불과하다. 승진과 보수.
하지만 공무원은 더욱더 자신이 존재할 가치를 승진 이외에 찾지 못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그가 9급이든, 7급이든, 5급이든 그냥 공무원일 뿐이다. 아쉽게도 그들은 최우선의 가치를 승진이라는 보상 시스템에 적용한다.
그들이 승진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쥐꼬리만 한 월급이 쥐꼬리만큼 올라간다.
2. 직접 실행보다는 말로 일을 할 수 있다.
3. 상사인데도 책임을 생각보다 지지 않는다.
이외에도 공무원들은 자기 계발을 거의 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자기 커리어를 여러 가지 도전과 경험을 통해 쌓아 왔던 전에 있던 직장 형들과 다르게 여기는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며 시간 외 수당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생계형 야근이라고 불리는 편법행위는 입사 당시보다 많이 사라졌지만, 문화가 한 번에 바뀌기는 어려울뿐더러 자녀가 있는 아버지라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피해는 눈치를 보는 젊은 공무원들도 강제로 야근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으며, 저녁이 아까웠다. 퇴근 후 자신의 색을 그나마 찾으려는 그들과 다르게 이들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공무원은 기상상태(비, 눈)나 긴급(산불)을 요구하는 일들이 있으므로 비상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직렬마다 업무 난도와 강도가 다르다. 토목, 건축직 공무원을 제외한 기술직 공무원들과 행정직 공무원들의 일은 단순반복 행정 및 민원처리가 많으므로 기획부서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난도가 낮다고 볼 수 있다. 합격한 뒤 뇌가 쓰이는 용량은 공부했던 대학전공 과제, 시험합격에 필요한 뇌, 기업에서 일했던 뇌에 반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가 전문성이 부족한 집단인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아는 일이 많으므로 야근을 통해 알아가자고 한다면 일머리가 좋지 않거나, 상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 생계형 수단이라고밖에 생각이 안들 정도로 업무 난도는 낮다.
토목직인 경우 도시개발이나 도시계획 관련 부서로 갈 경우, 법제처에 나온 법적 해석을 하므로 가끔 골치가 아플 수 있다. 법, 시행령, 시행규칙, 시 조례 등 법이 명확하지 않거나 서로 상충하여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는 변호사에게 자문하거나, 상대적으로 큰 예산이 집행되는 상황이 아니 거와 기관장의 공약과 멀다면 관행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 또한 행정처리를 위한 법적 해석이므로 앞으로는 사람이 하지 않고 판례분석을 통한 AI가 해도 되는 일이기도 하다. 시대에 맞춰 바꿔나가야 할 최전방에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시계는 반대로 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4차 산업 혁명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의견만 중점을 두어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아무래도 MZ 줄 퇴사의 주원인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보상과 감사시스템으로 압축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우리가 가진 게으른 뇌가 생존의 위험이 없는 환경 속에서 영위하기 참 좋은 곳이다. 그러므로 조직에 대한 충성과 성실성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방식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제는 어떤 대기업도 이 가치를 최우선시 두지 않으며 현시대와 맞지 않는다.
성실성이란 남에게 받는 평가이므로. 아무개가 성실하다고 소문이 나면 그 사람의 가치는 최소한 낮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성실성 이외의 문제 해결능력이 좋은 사람이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는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는 한, 자기 계발을 통한 전문성과 다양성을 수용하기 어려우며, 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생산성 없고 반복되는 일이 주를 이루기 쉽다. 공무원이 2024년까지 지속되던 시험이었던 암기과목 위주에서 공기업, 대기업과 같은 NCS, PSAT을 2025년부터 한참 뒤에나 도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제야 성실성이 아닌 문제해결능력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으로 볼 수 있으며, 공무원이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물론 사기업이라고 해서 업무평가를 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가 방식이 오류가 있더라도 빠르고 적절한 보상이 있다는 점은 공무원과 다르다. 급여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 회사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노예들은 더 월급 노예로 살아가게끔 인간의 본능에 맞춰 설계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기업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시스템인 똑같은 보상과 정년을 보장해 준다면 색깔 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각자의 위치가 다르므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 시스템은 어렸을 때부터 무한경쟁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해 본 아이들과 맞지 않는다. 즉, 공무원은 인간의 본능에서 생존의 욕구 이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고, 자신의 특색을 개발하지 않을수록 집단에 더 융화되고 유리하며 적합한 집단이다.
독보적으로 공무원과 공기업 그리고 군대처럼 계급사회가 엄연히 나뉘는 곳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사회에서 주는 정착된 메시지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주는 메시지란 사람들에게 널리 기억되는 방법으로 6가지로 (1. 단순성 2. 의외성 3. 구체성 4. 신뢰성 5. 감성 6. 스토리)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다.
사회에서 주는 정착된 메시지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으로서 미국 대통령 연설 중 하나를 발췌해 왔다.
“미국은 하나의 목표에 전념해야 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사람을 달 표면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메시지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공약이 사실이든 아니든 논거를 통해 입증하여 사람들에게 신뢰성을 준다. 마지막으로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한다.
문화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집단일수록 6가지 메시지 중 단순성에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성(simplicity)이란 실행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로, 단순할수록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쉽고 기억하기 쉽다. 스티브 잡스와 저커버그는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할 때 “줄여라, 줄여라, 줄여라”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문화에도 적용되며, 특히 군인과 공무원 등 보수적 집단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성향이다. 명령이나 지시가 단순할수록 사람들은 메시지를 더 기억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경험해 본 군대가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돌고 돌아 행정처리를 하는지 알 수 있으며, 공무원 집단도 군대보다는 더 나은 행정을 보여주나 도긴개긴이다. 복잡성을 단순성으로 바꾼다는 취지면 정치인들 메시지처럼 고차원적인 전략이 될 수 있으나, 여기는 명령이나 지시 시스템을 직원들에게 더 각인시키고 효율보다는 속도와 실행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익숙하게 알려진 MBTI로 S 성향이 짙은 사람들일수록 N보다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현실적이며, 자기만의 루틴을 가지며 살아간다. 내 친구 중 군인, 공무원 집안인 아이들이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루틴을 지키며 실행력이 대체로 강했다. 이 집단은 사회에서 정착된 메시지 중 단순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주체성이 없는 수동적 위치에서 비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수도 없이 겪는다.
반면에 사기업은 단순성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회사 이익의 목적으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 6가지 메시지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이므로 인간의 본능과 유사하게 노예들을 부리는 최고의 전략으로는 사기업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은 공익을 위해 일하다 보니, 융통성보다는 법적 해석을 원칙으로 업무를 처리하므로 밖에서 보는 시선으로 공무원들을 볼 때 답답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시스템(조건 : 똑같은 보상)에 입각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