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다(5)
2학년이 되고 나서. 남자인 재동이는 입영통지서가 날아왔고, 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대전이 고향이라, 공주 근처의 훈련소로 배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입대날이 다가오자, 그를 배웅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다. 재동은 머리를 짧게, 까까머리로 깎고 나타났다. 이마는 넓어졌고, 평소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고개를 숙이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나야. 뭐, 좀 웃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하긴 해. 하지만, 나쁘지 않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닭볶음탕을 함께 먹었다. 둘 다 어쩌지 못하는 긴장감이 감돌며, 한 숟가락씩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매콤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우리 사이를 오갔다. 식사를 마치고 훈련소 앞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탱크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탱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앞으로 자주 볼 무기였지만….
입영행사가 끝나고 그와의 이별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내가 없을 동안 잘 지내야 해."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을 군대로 보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위병소 밖으로 걸어 나오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는 훈련소에서 5주간 고된 훈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대를 배치받으면 면회를 올 수 있다고까지.
나는 핀란드어로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고, 사랑의 감정을 담아 애틋한 글을 적어 내려갔다.
Rakas Jae-dong,
Päivät ilman sinua tuntuvat pidemmiltä kuin koskaan ennen. Joka hetki ajattelen sinua ja toivon, että olet kunnossa. Vaikka tiedän, ettätämä on vain väliaikaista ja pian näemme taas, sydämeni on silti raskas.
Minusta tuntuu oudolta kirjoittaa sinulle näin kaukaa, kun olimme vielä hetki sitten vierekkäin, nauraen ja haaveillen yhdessä tulevaisuudesta. Mutta tiedä, että vaikka olet kaukana, ajatuksissani olet aina lähellä.
Olet minulle kaikki kaikessa, ja olen täällä odottamassa sinua, aivan kuten lupasin. Pidän lupaukseni, vaikka ajat ovat vaikeita. Me selviämme tästäyhdessä, vaikka matka on pitkä.
Kaikki kaunis muistuttaa minua sinusta. Aurinko taivaalla, joka valaisi aina hymysi, nyt tuntuu hiukan himmeämmältä ilman sinua. Ja kun yöllä katselen tähtiä, tiedän, että jossain siellä, sama taivas suojelee myös sinua.
Rakastan sinua enemmän kuin sanat voivat ilmaista, ja odotan sitäpäivää, kun jälleen saan olla sylissäsi.
Sinun ikuisesti,
Irena
(번역)
사랑하는 재동,
너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져. 매 순간 너를 생각하며, 네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이야. 이 시간이 일시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무거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둘이 나란히 앉아 웃고, 미래를 꿈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멀리서 편지를 쓰는 게 너무 낯설어. 하지만 네가 멀리 있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길은 멀지만, 우리는 함께야.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너를 떠올리게 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조차도 네 미소를 비추던 그때만큼은 조금 덜 빛나는 것 같아.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저 멀리서도 같은 하늘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믿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널 사랑해, 그리고 다시 네 품에 안길 날을 기다리고 있어.
영원한 너의,
이레나
그를 기다리며 '고무신'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은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을 때 다른 남자를 만나는 여자를 뜻하는 속어였다. 핀란드에서는 사랑의 기다림이 군대나 국가적 의무에 묶이지 않았기에, 스스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라는 표현도 재밌어, 여자친구가 배신한다는 걸 이렇게 표현하다니. 어쨌든 계산해보는 거야. 내가 재동이를 끝까지 기다릴 확률은? 나만의 공식을 하나 멋지게 짜볼까?'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확률에 대한 공식을 몇 번이고 노트에 빼곡히 적었다. 그가 군대로 떠나는 시간 동안, 내가 느끼게 될 외로움과 그리움, 외부의 유혹을 변수로 삼아 복잡한 수식을 풀어낸 행위였다. 펜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종이 위에는 여러 버전으로 계산되어 있었고, 각 상황에 따른 결괏값은 미세하게 달랐다. 하지만, 그 풀이과정과 답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다. 왜일까. 그 확률이 낮아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사랑을 수식으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마음 한편에서는 그 수치들이 무의미했다.
2학년이 되면서 나의 일상은 급격히 바빠졌다. 전공과목이 내 수업 계획표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토목공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역학’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어 하나하나가 낯설고 복잡했다. 응력, 전단력, 휨 모멘트….
책을 들여다보면 외계어를 읽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틀어박혀 스파게티 면으로 교량을 만들고, 공식을 풀어가며, 끝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서, 그만큼 점점 더 역학의 세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남자친구 재동과의 관계는 이어졌다. 재동이 군에 입대한 뒤로는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 휴가를 나오면 우리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 번은 남이섬에 놀러 갔다.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남이섬을 감쌌고, 단풍이 진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 둘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재동은 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여기, 우리 나중에 다시 오자. 그때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언제나 재동과의 시간은 소중했지만, 앞서 확률과 같이 인종과 피부색 그리고 언어의 장벽 등 현실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한편, 대학 생활 속에서는 다양한 인연들이 이어졌다. 보라와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누곤 했는데, 유독 신경 쓰이는 사람은 복학생 선배였다. 그 선배는 몇 번이나 친근하게 다가왔고, 계속해서 식사나 커피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그저 친절한 선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시선은 종종 불편할 정도로 깊었다. 한 번은 강의실 앞에서 그가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요즘 정말 바빠 보여. 밥은 잘 먹고 다녀? 재동이 군대 갔잖아. 사실 너 좋아하는 거 알아? 너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예상치 못한 고백에 말문이 막혔다. 차분히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 후에도 선배는 계속해서 다가오려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