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든 일단 시도해 보고 후회하는 편이다. 그러니 미련한 짓을 일삼는 경우가 참 많았는데, 예를 들면 길을 찾을 때가 그렇다. 지도 어플을 통해 목적지를 찾고 지시한 대로 따라가면 될 일을 나는 굳이 나의 직감과 방향성을 믿고 일단 그 길로 가보는 편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찾겠으면 그때 지도를 켜고 방향을 확인한다. 어떨 때는 완전히 반대로 가는 바람에 시간이 배로 걸리기도 했다. 아 씨- 저쪽이구나. 진즉 약속은 늦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보겠다고 한걸음 내달리는 바람에 땀 한 줄기는 덤이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지 않은 자에게 내려진 가혹한 시련일 테다. 정해진 길에 무의식적으로 반항해서일까? 이중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 또한 이 엉뚱한 버릇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단행하기에 앞서 더 많은 교수님이나 주변 동료들, 해당 학과의 사람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다방면으로 찾아보고 검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의 면담과 단 한 번의 결심 끝에 또 한 번 나의 직감과 방향을 믿는 고집을 부리고 말았다.
고등학교도 아니고 무려 대학교 수업에서 문과생이 이공 수업을 하루아침에 따라잡는다는 건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자고 나는 수강 신청에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인 ‘식품공학’을 첫 이수 과목으로 선택했던 걸까.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수리 영역을 가장 좋아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패기만 믿고 ‘B만 받자!’는 말도 안 되는 포부를 던지니 누가 보면 얼마나 우스웠을까. 식품공학과 학생들은 입학을 위해 최소 고등학교 3년, 입학 후 전공 교양 1년으로 이과 영역에서 최소 4년은 앞선 선배들인데 말이다. 하필이면 그 수업은 오리지널 학부생조차 A는커녕 B0 학점조차 받기 어렵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학부에서 까다롭기로 아주 유명한 그 교수님 때문인데, 예사말로 ‘원예과도 아니시면서 C 뿌리기가 특징’이라며 이미 많은 학생이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당연히 타 학부생인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첫 수업에 나섰다.
아, 생명공학 대학 건물은 이렇게 생겼구나. 대학 견학 온 고딩처럼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화장실도, 복사실도, 강의실도, 심지어는 정수기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이리저리 헤맸다. 그럼에도 매 순간 내가 타 학부에서 온 이방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헤매지 않는 척하느라 혼났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지만 우선 강의실부터 찾아서 앉아서 눈치를 살폈다. 그냥 물어보면 될 걸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딘가를 가길래 화장실을 가는 건가보다 싶어 몰래 뒤를 쫓았다. 알고 보니 담배를 태우러 가는 길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낙동강 오리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맨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각턱에 희끄무레하고 까슬한 턱수염, 엄격해 보이는 안경을 쓰신 모습이 딱 봐도 깐깐해 보이는 교수님이 등장했다. 그러고는 출석부에 6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출결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다음 이름이 나와야 하는 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강의실은 면접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자네, 영문학과인데 식품공학 수업은 왜 들으러 왔나?”
예상치 못한 돌발질문에 순간 땀 한 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그 짧은 시간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어, 내가 문과생인 걸 이렇게 다 알려버리면 어쩌지…? 여기 사람 엄청 많은데… 그나저나 뭐라고 답하지…? 음… 에라, 모르겠다
“맥주 만들고 싶어서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 8열에 빼곡히 앉은 학생들이 전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연극 동아리에서 했던 정기공연 마지막에도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진 않았었는데. 차라리 맨 앞에 앉을 걸 그랬나? 더욱 재밌는 사실은 내가 그 순간을 약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타 학부, 그것도 문과생이 이중 전공 이수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것도 가장 까다로운 수업의 엄격한 교수님의 질문에 뜬금없는 맥주라니.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들의 시선을 약간 즐기고 말았다. 반쪽짜리 취미가 완전한 취미로 거듭나는 첫 발자국을 떼는 이때, 앞으로의 고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일종의 나르시시즘만 만끽하고 있었다.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