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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Sep 13. 2023

#3 맥주를 만들고 싶어 식품공학 이중전공을 결심하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갖고 면밀히 들여보다 빠져들게 되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지곤 한다. 그저 차갑고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켜며 시원한 목 넘김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했던 맥주를 점차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접하면서 그 범주와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맥주 스타일이 있구나. 

이 재료가 쓰일 수도 있구나. 

저런 맛이 나는 맥주가 있구나. 


한참 새로운 맥주를 접하며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좀 더 전문적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늘 반쪽짜리 취미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예를 들면, 사용된 재료가 달라질 경우 어떻게 맛이 달라질 수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어떤 몰트를 얼마나 볶아서 색을 내면 까만 맥주가 만들어지는지. 보리, 홉, 물, 이스트의 기본 재료 외에 밀이나 옥수수, 오트, 귀리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하려면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건지. 산지가 다른 홉은 어떤 특성이 있고, 이걸 언제 어떻게 넣으면 맛이 달라지는지 등, 모든 것이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자 파고들고 싶은 영역이었다. 모름지기 맥주 마니아라면 직접 맥주도 만들어보는 실험정신이 필요하지 않나? 그러다 흔히들 들여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을 생각하고 마는데…


‘과연 내가 맥주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까?’


그렇다… 양조하는 방법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맥주 양조를 배우게 되면 지금까지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을 수 있으리라는 아주 순수한 생각에 휩싸여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양조를 배워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맥주양조 교육기관을 찾아보아도 쉬이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맥주양조 교육과정이 그리 많지 않았던 데다가 있더라도 학생 신분으로 참여하기에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당시 또래 친구들과는 아주 다른 방향이었는데, 왜냐하면 다들 취업 목적으로 상경대학으로의 이중전공이나 전과, 혹은 교환학생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오, 이중전공이라. 마침 교내 식품공학과가 있었고, 여기에서라면 양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아주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뜸 식품공학과의 교수님 한 분을 아무나 집어 진로상담 좀 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한 서너 분 보냈는데 다행히 한 분이 답장을 해주셨고 가까스로 면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준비한 질문은 아주 보잘것없었다. 

   

맥주를 만들고 싶어서 식품공학과에 이중전공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과학생인데 이공계 이중전공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4학년에 한 수업에서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메인은 아니다.

문과 학생이라도 의지만 있다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의외로 그리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의 나는 ‘답정너’ 였는지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든 식품공학을 수강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양조’만’ 하기 위해서였다면 보다 쉬운 길이 있었을 텐데 왜 이 방법을 고수했던 걸까? 사실 좀 더 찾아보았다면 복수전공이 아니라 외국을 나가거나 맥주기업 탐방을 하는 등 순한 맛부터 천천히 단계를 쌓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방에 전문성을 얻고 싶었던 모양인지, 식품공학을 수료하고, 식품공학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면 맥주양조에 필요한 많은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두 토픽의 연관성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먼저 파악해 보았다면 좋았을 것을 무턱대고 덤볐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전문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컨대 누군가 ‘너 뭐가 취미야?’라고 물으면, ‘어, 나 맥주 좋아해. 맥주가 좋아서 식품공학도 복수전공 중이야!’라고 답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결국 맥주를 취미로 들인 지 1년 만에 나는 이공계 복수전공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순수하게 맥주가 만들고 싶어서 복수 전공한 게 아니었다. 전문성 있는 취미가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별난 욕망에 절여져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 불쌍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나는 내 안에 꿈틀거리는 이 지독한 스노비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앞으로 찾아올 큰 시련을 맞이하고 만다.


-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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