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잡지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때의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는지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
퇴고와 출간을 마친 뒤, 월간 모임을 위해 일동 모두 펍에 모인 어느 날이었다. 지난호 작업을 하며 고생했던 이야기나 재밌었던 이야기, 다음호는 어떤 구상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매번 원격으로 작업하다 보니 직접 만나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맥주 한 잔씩 함께 하다 보면 저마다 맥주를 이모저모 이야기하곤 했다. 그 대화 중에 나의 심리를 가장 많이 자극했던 두 에디터와의 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
한 분은 맥주에 관한 글을 아주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에 남겨오신 분이었다. 맥주가 너무 좋아 유럽을 일주하며 양질의 맥주 콘텐츠를 기록해 왔기 때문에 소위 ‘파워블로거’로 인정받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고퀄리티 사진을 찍어서, 양질의 내용을 담고, 디테일한 시음기를 깔끔하게 올리는지. 깔끔한 기승전결에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업로드되는 글들이 보통 성실한 게 아닌 듯했다. 나도 나름 맥주행사들은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지만 어쩜 이 사람은 이렇게 생소한 곳을 많이도 다녀온 건지.
언젠가는 모니터에 두 개의 창을 띄워 내 글과 그의 글을 번갈아보며 우두커니 쳐다본 적이 있었다. 세상은 넓고 덕후는 많다. 나도 똑같은 플랫폼에 똑같은 취미를 기록하고 있는데, 자격지심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고는 내 글의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내가 쓴 글과 사진의 퀄리티 탓으로 돌려버렸다. 어쩐지 견물생심이 들어, 그가 썼던 양식을 그대로 베껴서 글을 작성해 보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따라 하더라도 전체 포스팅 숫자로 보나 글 내용으로 보나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진심이 담긴 글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다른 한 분은 주로 양조 상식을 다룬 글을 기고했다. 항상 잡지의 전반부에 배치가 되었던 이 글들은 전문적인 상식을 보다 쉽게 쓰거나 혹은, 웹상에서 아직 덜 알려진 상식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많은 구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던 그는 압도적으로 맥주 양조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홈브루잉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는 자가양조 경험만 수차례인 것처럼 보였다.
당시 맥주 양조는 비교적 비싼 취미였다. 대부분의 양조 재료는 모두 수입산이라 가격이 비쌌던 데다가, 홈브루잉 장비도 직구를 하거나 직접 개발해서 조달하는 집념이 필요했다. 아니면 양조 시설을 대여해 주는 곳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양조하는 수고를 부담해야 했다. 그렇게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가는 홈브루잉을 아무렇게나 하지는 않았을 테다. 아마 엄청난 사전조사와 공부를 선행을 하고 난 뒤, 비로소 양조에 돌입했을 것이다. 망치면 안 되니까 온 집중을 다해 몰입했을 것이고, 잘되었든 그렇지 않든 과정을 어떤 형태도를 기록해 왔을 것이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없었다면 초보자도 알기 쉬운 글을 금세 써내지 못했겠지. 이론보다 경험이,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격지심은 더욱 심해졌다. 그들과 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앞서가는 그들을 과연 쫓아갈 수나 있을까? 맥주 리뷰로도, 양조 지식으로도 한참 부족해 보이는 데 내 취미생활은 이 정도로 만족해도 되는 걸까?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의 하나의 명제가 질투하는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남의 노력을 탐하지 말라’는 옛 은사님의 가르침이었다.
우등생의 성적, 부러워할 수 있다. 질투가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아이도 결코 하루아침에 뚝딱 고득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길고 지루하더라도 한 걸음씩 노력을 더하여 이룬 눈부신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큰 성과가 뒤따르길 바라는가? 그것이 바로 노력을 탐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결과물은 충분히 부러워할 수 있다. 재력, 지위, 학벌... 이미 충분히 흔하고 흔한 질투유발자들이다. 질투가 나쁜 게 아니다. 질투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러나 노력마저 질투하고 탐한다면 어떨까. 먼저,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거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만심으로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혹은 노력을 저울질하며 타협하려 들지도 모른다. 혹은 노력을 포기하고 언젠가 찾아올 행운에 기대어 나태해질지 모른다. 그러니 남의 성과는 탐해도 그것이 노력 없이 주어졌다는 식의 노력은 탐하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질투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는 그가, 양조사로 거듭나는 그가, 맥주를 향한 수많은 열정들이 나에게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맥주를 향한 노력을 저울질하는 악행이 있었다. 블로그 포스팅 하는 일보다, 자가양조를 하는 일보다, 그냥 맥주만 마시는 덕질보다 이중전공을 하는 내 노력은 훨씬 더 큰 노력이라며 자만했음을 고백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시시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나는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비좁아졌다. 취미는 경쟁이 되었고, 나를 옭매는 덫이 되어 갔다.
노력의 가치는 결코 수치화될 수 없다. 모든 순수한 노력에 경중은 없다. 누구든 노력했다면 어떠한 결과든 나오기 마련이다. 기대보다 결과가 작더라도 스스로 노력했다면 과연 이를 두고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계속 쌓인다면 언젠가는 기대보다 더 큰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적어도 가만히 넋 놓고 한방을 노리는 한탕주의보다 나을지 모른다. 노력을 탐하지 말라... 결과가 어떻든 일단 노력부터 해보자... 그렇게 나는 수년이 지나 다시금 되뇌인다.
덕업일치가 힘들다는 말. 이를 두고 나는 좋아하는 게 일이 되어 힘들다기보다는, 어느샌가 순수함을 잃어버려서 덕질의 대상을 정말 좋아했는지 아닌지 혼란스럽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그즈음은 그렇게 혼탁했었나 보다.
-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