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산업에서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게 된 큰 계기가 두 번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은 그 계기가 나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며 핑계나 대고자 쓰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다시 덕업일치를 시작하려는 준비 단계에 있어 과거로부터 반면교사의 지혜를 얻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최대한 담백하고 솔직하게 서술하는 편이 나아 보였고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다.
나는 완전히 크래프트 브루어리에 취업하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상업적 양조가 아닌 펑키하고 실험적인 맥주를 선보이는 일종의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당시 그야말로 IT기업 버금가는 열린 기업문화와 자유로움으로 가득해 보였는데, 예를 들면 맥주를 마시며 회의를 한다던가, 맥주를 홍보하기 위한 재미난 이벤트 혹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던가 등... 현장에는 늘 웃음이 가득해 보였다. 상업용 맥주의 지루함을 깨고 온갖 실험적인 맥주를 만들고 선보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유롭고 반항적이었다. 평소 대기업 취업에 큰 관심은 없고,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마침 잡지일을 하면서 새로 생겨나는, 혹은 주목받고 있는 브루어리에 접점 하여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분위기인지 엿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외국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대표인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보편적인 ‘보수적 직장상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전국의 브루어리를 알게 모르게 투어 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크래프트 맥주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은연중에 물어보곤 했다. 대부분 돌아오는 답변은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어느 브루어리에 가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맥주 생산라인을 보며 거기 직원에게 한 마디 했다.
‘몇 년 후면 제가 여기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 그래요? 그래도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첫 직장인데...’
아마도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기보다 큰 물에서 놀아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이었다. 흥, 아무렴 안 신중했을까 봐. 나도 다 생각이 있다구.
아니, 솔직히 별생각 없었다. 물론 큰 회사에서 일하면 좋지. 하지만 그런 곳은 자유가 없지 않을까 의심했다. 일이야 다니면서 배우면 되는 거고, 근무환경이나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기보다 회사가 나를 선택해 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희망사항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학력이어도 열정은 누구보다 높으니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봐 주겠거니 했던 셈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불킥 할만한 오만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두 번의 오퍼가 있었다. 한 번은 건대에서 크게 열린 맥주축제에서 일을 할 때였다. 열심히 맥주를 서브하며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이 브루어리 대표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건넸다. 나는 그동안 맥주에 빠진 것부터 맥주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까지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쭉 들어보니 맥주에 관심도 많아 보이고 열정도 있어 보이는데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느냐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오- 진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구나! 역시 세상은 아직 퍼렇고 살만하구나. 나는 곧바로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했고, 다음 주 지방 출장을 가는데 따라가자고 했다. 일한다 그러면 뭐 계약서도 쓰고 그러지 않나?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귀신에 홀린 듯 나는 함께 출장길에 올랐다.
아직 맥주 양조장이 없어 다른 양조장에 위탁생산을 제안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직은 예산이 없지만 추후 자체 양조장도 지어서 사업규모를 키울 거라 했다. 자기 양조장도 없는데 어떻게 맥주를 홍보하고 유통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고는 삼성역으로 다시 와서는 자신들의 맥주가 유통되는 업장을 몇 군데 소개해주고 맥주를 공짜로 주었다. 그러고는 일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 맥주, 아직 시작이지만 서울 중심부 대형 펍에 다 태핑 되어있어. 이런 식으로 유통경로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는 양조가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양조가 가능한 일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이건 영업직무 아닌가.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양조도 할 수 있다고 그랬지만 정중히 일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언제가 될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바틀샵 겸 식당에서 일단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몇 개월 뒤면 근교에 브루어리를 지을 예정이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양조도 해볼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두어 달을 좁은 바틀샵에서 있었다. 그런데, 도통 매장 직원들과 친해질 수가 없었다. 너무 성격이 거칠거나, 혹은 너무 철벽이었다. 자기는 왜 이렇게 비싼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 수 있기는 한데, 어딘지 실망스러웠다. 내가 상상했던 - 크래프트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즐겁게 일하는 그런 문화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이후 내 마음을 흔든 한 가지 큰 사건이 도래했다. 근무 적응을 잘 못하던 중 상미기한이 임박한 수입맥주를 다니며 떨이납품을 하는 영업을 해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 말이 있자마자 그만두겠다고 했다. 첫 번째 사례와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일단 양조를 언제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사업이라는 게 결코 뚝딱 되는 게 아니니까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조급함이 앞섰다. 그런 데다가 인간관계도 적응이 서툴러 매장에서 나는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이제 한 달 후면 팔 수 없는 맥주를 팔고 다니라니! 내가 일하고 싶은 맥주씬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새로운 맥주를 향해 고민하고 어렵더라도 진짜 끈끈한 팀워크가 있는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그러고서는 덕업일치를 상당히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 여러 부분에서 혼이 나갈 것 같았다. 경쟁심리가 너무 심해졌고, 자만심은 너무 높았으며, 크래프트 맥주산업은 기대보다 낮은 근무환경처럼 보였다. 취미를 일로 삼는 일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 며칠을 술만 펐다. 그러고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 휴학을 결정했다. 맥주가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도 터닝을 고려할 필요를 느꼈다.
마치 열탕에 발가락만 담가보고 뜨겁다고 도망치는 꼴처럼 꼴랑 몇 달 일해본 걸 가지고 방향 자체를 틀어버렸던 게 많이 후회된다. 사실 오퍼 자체도 내가 문을 두드린 결과도 아니었지 않은가. 내가 진정으로 양조를 하고 싶었다면 이상한 로망은 진즉 접어두고 직접 문을 더 두드렸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소중한 취미가 더 이상 상처받게 놔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취미는 취미대로 두고, 일은 일대로 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일이라며 속단했다.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닌 데 말이다.
-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