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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Apr 14. 2023

“경계의 모호함이 지식의 향연으로”

매곡도서관

“경계의 모호함이 지식의 향연으로” - 매곡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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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자원봉사를 할 때였다. 한창 실내 방역이 중요했던 작년 여름, 방문자들이 출입문에서 열 체크, 손 소독을 원활히 할 수 있게끔 도왔다. 방문객 중엔 가족 단위가 많았는데, 이들은 생각보다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적었다. 주말 아침,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쉴 법도 했지만, 이들은 한 보따리 들고 온 책을 반납하고 다시 책만 대출하여 도서관을 나섰다.


코로나로 중요해진 위생 안전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방역이 끝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의구심은 깊어졌다. 그 이유를 근래 방문한 ‘매곡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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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출발점이었던 도서관은 언제부터인가 이벤트 공간이 중심이 되었고, 핵심 공간인 열람실은 노트북과 개인 책으로 뒤덮인 독서실이 되었다. 공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기능적으로 실을 명확히 구획하였지만, 이는 열람실과 다른 실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지식의 확장과 공유, 더욱이 커지는 지식의 향연을 촉진하는 도서관의 본질이 사라진 것이다.


봉사활동을 했던 집 앞 도서관뿐만 아니라, 종종 방문했던 인근의 다른 도서관 모두, 어린이 자료실과 종합자료실은 구분되어있으며, 서로 다른 층에 있다. 그래서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한 장소에서 서로 원하는 책을 읽기가 번거롭다. 겨우겨우 책을 골라 삼삼오오 모여 읽는다 한들, 독서실이 되어버린 열람실은 그들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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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 도서관’은 가장 중요한 열람실을 중심에 배치하고 개방했다. 열람실에는 어린이 도서부터 성인 도서까지, 나이 구분 없는 모든 책이 벽면에 꽂혀있다. 그래서 매곡 도서관은 가족, 친구, 연인 상관없이 모두가 한곳에 모여 독서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주말 오전, 열람실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한 책상에 모여 책 읽는 모습이 인상 깊다.


열람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경사로가 지식의 향연을 일으킨다. 열람실을 감싼 경사로는 순환 동선으로 대지의 완만한 경사가 공간으로 침투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안과 밖은 벽으로 명확히 구분되지만, 동선은 지형에 순응하기에 내부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경사로를 따라 배치된 개별실은 중심 공간인 열람실과 소통하게 하고, 사람들의 동선에 맞춰 나타나 유기적 관계를 맺게 한다.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공간에 변주를 주며, 두꺼운 난간이 열람실을 가리기도 하여 공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사로를 타고 오르다 보이는 예상치 못한 실내 정원 또한 공간 경험을 다채롭게 해주는 요소다.


개방되어 모호해진 경계의 열람실은 경사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로 적막을 깬다. 이는 지식의 출발과 확장을 책임졌던 도서관의 본질을 일깨운다. 그래서일까, 작은 실 구성과 크지 않은 건물임에도 내부는 풍성하고 꽉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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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IDR Architects ( @idr_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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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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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매곡로 138-19

매일 09:00 - 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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