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앞에서 나는

by 요가언니



선생님 주위에 둘러앉아 파도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지구과학 시간 같기도 했고, 지리 시간 같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 좋았다.

파도는 쉬지 않고, 아니 내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왔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다음 파도가, 또 그 다음 파도가 들이닥쳐서, 말 그대로 파도에 ‘귀싸대기’를 연속으로 맞았다. 바닷물을 숱하게 먹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바위에 붙은 미역과 다름없는 몰골이 되었다.

“와우, 저 멀리서 파도 자동 생성기계가 있는 것만 같아”
“응, 바람”

아 그렇지, 바람.


난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바람도, 파도도 모르고, 아니 내 몸 하나 제대로 일으켜 세울 줄도 몰랐다. 여기에 있는 동안 난 한없이 작아졌고, 단순해졌고,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정리되며 자연히 겸손해졌다.


내가 가진 학위들을 계급장처럼 붙이고 선생님이라 불리며 미술시장이 어떻고 예술의 사회참여가 어쩌고를 논하던 나는 희미해지고, 언어는 부족하고 자연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는 어린 나만 남았다. 그러니까 같이 서핑 수업을 듣는 9살 호주 어린이와 나는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 아이가 나보다 여러모로 낫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알아야할 것은 다름 아닌 오늘의 바람과 바람이 만들어줄 파도였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눈곱만치도 알지 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내 주변의 일상적인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는 어휘가 너무도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차츰 사물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서 "아하!"하고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변화 과정을 끝까지 관찰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피터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p.121








글: 에디 (http://instagram.com/edihealer)
사진: 에이프릴 (http://instagram.com/pyunchaeyoung)


매주 화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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