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맨리비치에서 만난 서퍼는 꼭 바이런베이에 가보라고 했다. 조용한 맨리비치를 마음에 들어하는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진짜 서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바이런베이를 다음 서핑여행지로 결정했지만 실제로 오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렸다. 바이런베이에 갔을 때는 6월, 그러니까 본격적인 7-8월의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바이런베이는 조용했다. 여름 휴가철을 한참 지나, 겨울이 오고 있을 때 갔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해가 진 후 그곳은 동네 자체가 깜깜해졌다. 호주의 카페들은 오후 3~4시면 문을 닫고, 상점들은 6시면 문을 닫는다. 상점에 불이 꺼지니 동네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 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일찍부터 잠들어서인지 충분히 자고 일어났는데도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산책이나 할 겸 바닷가로 나갔더니, 동이 트기 전부터 로컬들은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출을 맞으며 파도를 타고 있는 서퍼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The Pass에 올라 한참이나 리얼 서퍼들의 모닝서핑을 넋 놓고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가 자고 있는 April을 깨워 카페에 갔다. 오전 7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이미 카페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모닝서핑을 하던 서퍼들도 웻수트를 입고 서프보드를 든 채로 하나 둘 카페로 들어왔다.
호주에 오면 고집스럽게 매일 먹는 아보카도 토스트와 플랫화이트 앞에 두고 있는데,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부른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서의 나는 식욕도 왕성하고 식탐도 많은 사람인데, 여기에서는 몇 시간이고 바다에서 놀다 나와도 특별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체격 건장한 서퍼들이 아사이볼 한 그릇이나 샐러드 한 접시로 식사를 마치는 것이 신기했는데, 그게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나의 허기는 진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몸을 움직이는데 그렇게까지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음식 심리학자 수잔 앨버스는 <감정 식사>에서 건강에 유익한 결정과 후회스러운 결정을 갈라놓는 요인은 백이면 백 ‘감정’이라고 말했다. 감정 때문에 먹지 않아야 할 음식을 선택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책상에 앉아 끊임없이 먹던 초콜릿, 우걱우걱 씹어대던 감자칩, 정신을 깨우는 약처럼 벌컥벌컥 마시던 커피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몸이 필요로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바꾸기 위해 먹는 것들이었다. 혀끝에 닿는 달콤함으로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쓴 커피 한 모금으로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서, 씹어대는 맛과 소리로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서핑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충분히 자고도 일찍 일어났으며 내 몸이 원하는 만큼의 적당한 양의 음식을 기분좋게 먹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가벼워졌다. 서울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또 초콜릿을 까먹고, 젤리를 씹어대고, 설탕이 가득 든 믹스커피를 마실지언정.
글: 에디 (http://instagram.com/edihealer)
사진: 에이프릴 (http://instagram.com/pyunchae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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