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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r 15. 2021

플라스틱과 육식, 그리고 요가


"내 선물은 <에디 에코 키트 Edi's Eco Kit>야."

고개를 갸우뚱하던 친구들은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우와, 이거 예뻐서 어떻게 사용하지? 우선 사진부터 찍어야 해."

라는 반응으로 바뀌곤 했다.


친구들에게 내가 엄선하고 이름 붙인 '에디 에코 키트'를 선물한다.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로 만든 칫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고 알약같이 생긴, 씹어서 양치를 할 수 있는 고체 치약,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체 샴푸바, 린스바, 그리고 천연 아로마 비누, 마지막으로 천연 수세미 등으로 이루어진 꾸러미이다.

 

대나무 칫솔을 사진으로는 봤어도 처음 만져봤고 고체 치약은 들어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 포장도 없이 덩그러니 들어있는 소박한 비누들을 인스타그래머블 하다며 좋아해 준다. 내가 주변을 계몽하고, 의식을 바꿔야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런 옵션도 존재한다는 것을 소개해주는 것이 의도이고, 그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은 6개월 전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을 때였다. 바다 저 멀리 떠 있는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보다가 그것이 페트병 뭉치임을 알아차렸을 때의 혼란과 감정을 브런치에 글로 썼었다.


https://brunch.co.kr/@edihealer/236



처음 채식, 비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약 10개월 전이었다. 비건이라는 개념과 방식 역시 꽤 큰 충격이었고, 그때의 고민을 글로 남겼었다.  


https://brunch.co.kr/@edihealer/166



6개월, 10개월 전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나는 개별적인 사건을 겪으며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된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플라스틱 문제, 환경오염 문제, 건강 문제, 동물복지 문제는 느슨하면서도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아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요가 덕분에 조금씩 바뀌고 있던 사고와 신념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생명에 폭력을 가하지 않는 요가의 ‘아힘사’, ‘비폭력’ 말이다.


현재 나는 비건의 가장 낮은 단계라 할 수 있는 플렉시테리안 flexiterian이다. 플랙서블한 비건이라는 것인데, 완벽하게 고기나 해산물을 끊지 못했지만 내 냉장고에는 더 이상 육류, 어류, 계란, 우유 등을 들이지 않는다. 가지구이, 당근 샐러드, 바질 페스토 파스타, 후무스 등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들이 정말로 많다. 하지만 시리얼이나 커피에는 우유 대신 소이 밀크, 아몬드 밀크를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와인 안주로 브리 치즈, 바게트 위에 이즈니 버터를 끊지 못하는 나는 종종 모순 덩어리라는 놀림을 받는다.


플라스틱 프리는 조금 나은 것 같은데,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브리타 정수기를 구입하여 더 이상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샤워기 옆 선반에는 샴푸바, 린스바, 바디용 아로마 비누가 알록달록 놓여있다. 그동안 사놓은 것이 많아서 샴푸, 린스의 플라스틱 통이 집에서 사라지는데 6개월쯤 걸렸다. 주방세제 대신 사용하는 설거지바는 너무 잘 사용해서 1/3밖에 안 남았고, 그 옆에는 과일 세정바도 있다. 세탁세제는 플라스틱에 든 액체형 대신에 종이박스에 든 가루형과 물에 녹는 시트형 세제로 바꿨고, 지금 쓰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섬유유연제를 다 쓰면 아로마 에센셜 오일로 대체해 향을 유지할 예정이다.


문제는 욕실 세정제인데, 도무지 플라스틱 용기에 들지 않은 세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좌절하던 중에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으로 욕실 세정제 만드는 법을 추천 받았고, 여기에 식초를 부으면 부글부글 화학반응을 하여 반짝반짝한 욕실로 변신한다는 것을 알았다. 청소에는 식물 그대로 말린 천연수세미를 사용한다.


그 밖에 20년간 성장한 나무를 베어 만드는 목재 펄프 대신 3개월이면 충분히 자라는 '풀'인 대나무로 만든 휴지를 사용한다던가, 화장실에서 페이퍼 타월 대신 내 손수건에 물기 닦기,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오는 배달음식 시키지 않기 같은 것들도 하고 있다.



"근데, 매달 드는 정수기 필터 값이 만만치 않아보이네. 페트병 생수가 훨씬 싸."

"대나무 휴지가 좋은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비싼 휴지를 어떻게 화장실에서 써?"

"고체 샴푸는 천연 재료라 그런 건가 비싸네."

"야근하고 녹초가 되어 오면 배달 밖에 답이 없어. 요리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요새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이것이다.


누구나 채식을 '선택'하거나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채식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특권'에 가까운 것이다.

조한진희 <연결성을 넘어 위치성으로> 중에서


여성, 평화, 장애 운동가 조한진희는 이런 실천이 가능한 환경과 위치성에 대해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위치성을 간과할 때 타인의 고통과 존재성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한진희는 채식으로 설명했지만 이는 플라스틱 프리 같은 환경 보호를 위한 다른 활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전쟁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사유를 차단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고귀한 윤리적 선택지'를 앗아간다. 그리고 이 사회가 규정한 '표준의 몸'이나 '평균의 삶'에서 빗겨 난 존재들에게 채식을 실천한다는 것은 정신 승리나 고된 노동이 추가되는 것이기 쉽다.

같은 책에서


쉽게 설명하자면, 맥도널드 햄버거는 이태원 비건 레스토랑에서 파는 비욘드미트로 만든 햄버거의 반값도 안 한다. 가벼운 지갑은 '고귀한 윤리적 선택'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장애인 식사 보조는 부수적인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각종 야채 요리 대신 단시간에 휘리릭 볶아 낼 수 있는 고기를 주로 낸다고 한다. 이렇게 '표준의 몸'이 아닌 이들에게 채식은 고된 노동이 더해지는 일일 뿐이다.


내가 신념을 갖고 하는 행동들이 타인에게 불편함, 위화감을 주거나 나아가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것 = 악'과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폭력이 되지 않도록 수시로 돌아보고 반성하고 있다.



수십 년간 형성된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변하는 게 그리 대단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남자 친구의 집에 설거지바를 갖다 놓고, 샴푸바를 올려놓고, 대나무 칫솔을 꽂아놓고 오면, 그에게 거창한 담론이나 설명을 한 적이 없는데도 아무말 없이 잘 사용한다. 콩고기 버거나 비건 케이크가 먹고 싶다 하면 같이 맛있게 먹어준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All or Nothing의 사고로 할 거면 제대로, 안 할 거면 아예 안 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하나라도 시도해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아래의 책들을 더 읽었습니다.


- 비건

조너선 샤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2020)

이라영 외, <비거닝> (2020)

황주영, 안백린,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비건 셰프와 철학자의 동물생각> (2019)

보선, <나의 비거니즘 만화> (2020)


- 플라스틱 프리

미힐 로스캄 아빙, <플라스틱 수프> (2020)

고금숙,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2019)




매주 월요일에 만나요


글: 에디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제시 https://instagram.com/jessiejihye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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