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미터밖에 안 되는데 여기를 가자고? 북한산이 800미터야.”
“근데 여기가 경주에 있는 100대 명산이래. 더 높은 산이 100대 명산이 아니고 이게 명산인걸 보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에이~ 우리가 그래도 평소에 가던 산 수준이 있는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오늘은 그냥 쉬엄쉬엄 가보지 뭐.”
2년 전 코로나로 실내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던 시절, 친구와 한창 봄 등산을 다녔었다. 여름이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경주를 여름 휴가지로 정했고, 등산을 했다. 열정은 가득 하나 경험은 미천했던 등산 초보들은 산 높이만 보고 ‘쉬워 보이는’ 경주 남산에 갔다.
경주 남산 국립공원은 신라시대의 불교 유적지로서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의 말 그대로 보물산이었다. 남산 안에 80여 개의 불상과 100개가 넘는 절터가 있다고 한다. 한때 많은 이들이 1박 2일 멤버들이 유홍준 교수와 함께 7대 보물 찾기를 했던 루트를 따라기도 했다. 다만 불상의 머리가 대부분 없다는 것, 아마도 조선시대 불교 억제 정책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얼굴을 상상하며 봐야 한다는 것이 아쉽긴 했다.
사실 나에게 보물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팔색조 같은 남산의 모습이었다. 분명 소나무 숲으로 시작된 남산은 어느새 돌산으로 이어졌는데, 가다 보니 졸졸 계곡이 흘러 발을 담그고 있었고, 한참 후에 고개를 들어보니 나는 대나무 숲 안에 있었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에 쉬운 코스와 암벽등반을 해야 할 것 같은 어려운 코스가 섞여있어 평생에 걸쳐 수십 번은 올라야 할 것 같은 도전을 부르는 산이었다.
지난주 경주 벚꽃놀이를 간 김에 보물이 가득한 산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의 경주 남산 첫 코스였던, 가장 짧고 쉬운 삼릉에서 금오봉에 이르는 2시간 반짜리로 다시 올랐다.
거의 1년 만의 등산이기도 했고, 등산 경험이 적은 친구와의 산행이라 등산 전 스트레칭을 꼼꼼히 해보았다. 사실 꼼꼼히라고 해봐야 5분 남짓인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면 빨리 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요가를 하듯이 차분하게 스트레칭을 하기는 쉽지 않다 상하체 전체를 꼼꼼히 풀어주면 금상첨화겠으나, 실질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부위는 하체이기 때문에 하체에 집중한다면 5분이면 된다.
산은 경사면이다. 그러니까 산에 오른다는 것은 평소보다 발목을 많이 꺾어서 발바닥을 경사면에 착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발목 스트레칭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발목을 더 큰 각도로 꺾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다. 발가락을 멀리 보내 발등을 길게 늘였다가 발목을 꺾어서 발뒤꿈치가 멀어지게 발목을 끄덕여보자. 발레 용어로 포인트 pointe, 플렉스 flex라고 부른다. 수차례 발목을 꺾었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한 후에는 발목을 돌리며 마무리한다. 정방향, 역방향으로 서클을 그린다.
발목 위로 연결되어 있는 종아리 근육으로 넘어가자. 경사지를 오르기 위해 발목을 꺾으면 자연히 종아리 근육이 길게 늘어나게 되는데, 근육에 탄력이 없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사람이라면 근육을 늘리는 동작 자체만으로도 종아리에 쥐가 날 수 있다. 언제나 근육은 말랑말랑하고 탄력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계단처럼 단차가 있는 돌을 찾거나, 주변 큰 나무 위에 발바닥을 대고 몸을 살짝 숙여서 종아리 근육을 늘려본다. 평소에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계단에서도 할 수 있다. 뒤꿈치를 계단 밖으로 빼고 서서 뒤꿈치를 아래로 내려 종아리를 길게 늘이는 거다. 뒤로 떨어지지 않게 손잡이를 잘 잡고 말이다.
스트레칭의 마지막 순서는 가장 큰 허벅지 근육이다. 큰 근육이다 보니 허벅지 앞쪽, 뒤쪽, 안쪽을 나누어 풀어보겠으나, 실은 모든 근육들이 연관이 있다. 산에서 돌계단이나 나무계단을 올라간다고 상상해보자. 무릎을 접고 다리를 번쩍 들게 되는데, 이때 다리를 드는데 가장 큰 힘을 사용하는 것이 허벅지 앞쪽 대퇴사두근이다. 대퇴사두근은 유연하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며 탄력 있게 움직여야 하나, 그렇지 못할 경우 근육이 흡수하지 못한 충격을 오롯이 무릎이 받게 된다. 오른손으로 나무를 잘 지지하고 왼 무릎을 접어 왼손으로 왼 발목을 잡는다. 이때 양 무릎이 나란하도록 위치시키고, 왼 뒤꿈치만 엉덩이 방향으로 당겨서 허벅지 앞쪽이 팽팽하게 늘어나게 한다.
허벅지 뒷면도 같은 원리이다. 급경사나 계단을 올라갈 때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고관절도 접힌다. 그것을 영어로는 힙 힌지 hip hinge라고 부르는데, 힌지는 경첩처럼 오므렸다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서있을 때 고관절이 펼쳐지고, 앉아있을 때 고관절이 접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다. 고관절을 구부려 무릎을 들면, 자연히 엉덩이부터 허벅지 뒷면 근육은 늘어나게 된다. 근육이 놀라지 않도록 허벅지 뒷근육, 햄스트링을 스트레칭해보자. 큰 나무에 등을 대고 선다. 오른 무릎을 접어서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고, 양손을 무릎 아래 깍지 껴서 당기는 요가의 바람빼기자세를 해본다. 허벅지 뒷면이 길게 늘어나는 것을 느껴본다.
마지막은 허벅지 안쪽 내전근 스트레칭이다. 허벅지 안쪽을 왜?라고 묻는다면 답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무릎을 구부릴 때, 예를 들어 계단을 오를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무릎이 안쪽으로 모인다. 나도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그렇게 걷긴 하는데 이것은 관절 건강에 좋지 않다. 무릎을 구부릴 때, 무릎은 항상 두 번째 발가락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접히지 않으면 무릎관절이 어긋나고, 이게 또 발목 관절에까지 영향을 줘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무릎이 가운데로 모이는 이유 중 하나는 허벅지 안쪽 내전근이 타이트해서 이다. 양다리를 어깨 두 배 너비로 벌리고 발가락이 바깥쪽을 향하게 서본다. 무릎을 구부려서 와이드스쿼트 자세를 만들고 양손으로 각각의 무릎을 잡은 후 한쪽씩 어깨를 가운데로 내린다. 허벅지 안쪽이 길게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봄날 산행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과 새순들을 보는 재미로 역시나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노란색,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보물섬 아닌가? 친구에게 숨겨놨던 보물을 보여준 기분이었다.
그리고 등산 전후의 꼼꼼한 스트레칭 덕분인지, 등산 후 근육통이 없었다는 사실!
https://youtu.be/yOaOJ3s97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