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이번에 허리디스크 수술 했잖아. 아직 30대 밖에 안됐는데 수술을 빨리했어.”
“이과장은 목디스크 수술해서 목에 깁스하고 다니던데.”
직장인들에게 디스크 진단과 수술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하루 종일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는 말린어깨의 전유물이자 고개를 쑥 빼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북목 월급쟁이의 전리품이라고나 할까. 엄밀히 허리통증을 직장인들만의 문제라 할 수는 없다. 요가원에 가면 학생, 주부, 프리랜서 등 각계각층에 포진되어있는 요통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게 또 회원들만의 것도 아니어서
“제가 이번에 수련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데모를 못 보여드리니까 회원님의 시범으로 대신할게요.”
종종 요가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한다. 아무래도 요가 강사들은 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을 많이 하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가는지, 알게 모르게 정형외과 물리치료나 도수치료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 10년 차,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나는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친구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라고 했지. 그렇게 누워만 있으니까 탈이 나는 것 아냐.”
“수술이 능사가 아니야. 의지만 있으면 운동으로 다 고칠 수 있어.”
라는 미검증 정보를 섞은 독설을 거리낌 없이 내뱉곤 했다.
전 세계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 4월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침대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이불을 박차며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는 사람인데, 뭔가 이상했다.
‘아직 술이 덜 깼나?’
‘요즘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한창 뉴스나 문자를 통해 확진자 동선이 세세하게 공개되며 처음 겪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매일 퇴근 후에 가던 요가원을 못 가게 되었다. 그때는 실내체육시설 운영금지 명령이 내려지기 전이긴 했는데, 하나 둘 회원수가 줄어들자 내가 다니는 요가원 원장선생님은 휴업을 결정했다. 강사 월급과 신규 등록 회원율을 비교하면 적자였기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요가 하는 사람이 된 후부터 요가원은 퇴근 후에 내가 갈 곳이었고, 그 곳에서 요가를 하며 업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까지 마쳐야 하루가 마무리됐었다.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면서 머리와 몸의 노폐물을 싹 빼내 개운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루틴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몇 년간의 패턴이 깨지니 난감했다. 그렇다고 코로나시기에 굳이 없던 약속을 잡아 친구를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어깨에 이고 지고 불 꺼진 빈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냉장고에서 맥주 캔부터 꺼내 땄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려 잠들었다. 살이 점점 올라 몸은 둔해졌고 의식은 흐리멍덩해졌으며 업무시간에 졸음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다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요가 수업시간에 배웠던, 누워서 하는 스트레칭을 조금씩 해보았다. 선생님이 요통환자들을 위한 스트레칭이라고 말씀 하실 때, 내게는 필요하지 않은 쉬운 동작이라 생각하며 설렁설렁 했던 동작들이다. 이를테면 누운 채로 양 무릎을 접어 가슴으로 끌어안는 바람빼기 동작이라던가, 접은 양 무릎을 좌우 바닥으로 끌어내려 옆구리와 아래허리를 길게 늘이는 트위스트 동작 같은 것들 말이다.
“어어어어어어어. 휴우, 휴~우, 휴우~우.”
맙소사, 양 무릎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거리가 이렇게 멀었었다니. 30초, 어쩌면 1분여에 걸쳐 정말 천천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되었다 생각하며 다리를 들고 무릎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천천히 근육이 따뜻해지고 늘어나는 느낌을 상상하면서 움직임의 범위를 넓혀갔다. 그렇게 30분가량을 꼼지락 거리고 나서야 겨우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같은 독신은 돌봐줄 배우자도, 아프다고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는 가족도 없으니 자기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만 하는데, 그동안 너무나 건강해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때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유튜브 선생님이었다. 전 세계의 저명한 의사, 유명한 물리치료사, 스타 요가강사들이 요통에 대한 의학적, 재활 의학적, 근육학적, 심지어 심리학적 정보까지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줬다. 매일매일 요통환자를 위한 재활운동과 요가를 따라하며 나는 한 달여 만에 요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구독하게 된 요가, 필라테스 채널들은 지난 2년간 코로나시대에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에는 노트북의 큰 화면을 켜놔도 선생님의 동작이 잘 보이지 않고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더니 이제는 작은 핸드폰 화면에도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랜선 요기가 되었다.
랜선요가, 온라인요가의 매력은 오프라인 수업과는 또 달랐고,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동안 요가 수업은 요가복을 챙겨 입고 요가원으로 걸어가서 수련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면 수업시간 60분에 왕복 이동시간 30분,준비시간 10분까지 대략 100분 이상이 소요됐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유튜브 앱을 열고 방바닥에 앉으면 바로 요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외출까지 20분밖에 여유가 없는 짧은 시간에도 18분짜리 수업영상을 플레이해 수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자주, 더 많이 요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원에서의 60분 수련만 정통성이 있고 가치 있다며 요가원 요가만 고집했다면 알 수 없는 세상이 온라인에 있었다.
두 번째 장점은 수준별, 컨디션별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 어깨가 뻐근하다면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요가’를 찾아 따라하고, 다리가 퉁퉁 부운 것 같은 날에는 ‘하체부종을 완화해주는 요가’ 수업을 찾아 들었다. 그러다가도 강한 수련을 하고 싶은 날이면 상급자 코스를 선택해, 다른 수련자들과 수련실에서 함께 호흡하고 땀 흘리는 상상을 하며 어려운 동작을 해내곤 했다. 유튜브 속 선생님이 5분 머리서기를 하라고 말씀하시면 내려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5분을 유지했으니 선생님이 내 옆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수업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추가됐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비싼 강의료로 진입장벽이 높았던 스타강사의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요가에 푹 빠진 사람이라 유명한 스타 요가 강사 수업이 있으면 주말마다 특강을 따라다니며 수련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유명 강사의 특강은 수강신청이 어렵기도 하지만 비싼 수강료가 항상 부담이었다. 오죽하면 요가 강사들이 강사 월급 받은 것을 알뜰히 모아 구루, 스승께 가르침을 받는데 모두 사용한다는 말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 콧대 높은 스타강사들이 하나 둘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요가원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의 유일한 수련방식이었기 때문인지,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내자는 위로의 의미인지, 어쨌든 선생님들은 앞 다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수업을 진행했고, 영상을 배포했다. 라이브 방송을 놓치지 않기 위해 퇴근을 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매트를 펴고 앉았다. 그 요가수업 영상이 채널에 저장되면 다음날 또 따라하면서, “선생님 수업 올려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코로나시기에 요가원을 못 갔는데 내 요가실력이 부쩍 성장한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시기는 분명 암울하고 힘들고 답답했지만, 이 시간을 통과하며 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은 요가원에 성실하게 출석하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것에 수련의 가치를 뒀었다. 하지만 60분을 채우지 않더라도 요가 매트를 펴고 그 자리에 눕는 것 자체가, 내 몸의 긴장을 풀 시간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몸과 마음의 이완을 위한 의식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가 해제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다시 요가원에 나간다. 집에서 마스크 없이 잠옷 차림으로 요가를 하다가, 꽉 조이는 레깅스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수련을 하려니 영 어색하다. 분명 옆 수련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좋아서 요가원에서의 수련이 좋았었는데 지금은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졌나보다. 모여서 하는 요가는 싫고, 혼자 하는 요가만 좋다는 말은 아니다. 코로나가 우리 곁에 온 이후 2년 반 동안 시대가 변했고, 사회 분위기가 변했고, 내가 변한 것이다. 삶이 변화할 때 고집과 아집을 부리지 않고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건 신체의 유연함을 넘은 의식의 유연함이다. 요가를 하면서 유연한 사람이 된 것이 분명하다.
https://youtu.be/oP0qLwGWU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