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의 야마- 아파리그라하
친구 A가 쓰러졌다. 나이가 같다고 몸 상태도 같은 것은 아니어서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과 밥을 잘 챙겨 먹지 않거나 과하게 먹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건강은 천지차이이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부, 근육 등의 외모만 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건강, 그러니까 질병 상태도 확연히 다르다. 또 다른 친구 B가 가보자고 했다. 가기 전에 A의 집이 매우 지저분하다고, 아무래도 저장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귀띔해주었다.
저장 강박(compulsive hoarding)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전 세계 인구의 약 5%가 저장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현대인들은 어느 정도의 저장 강박장애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옷장에 몇 년간 안 입은 코트가 들어있거나,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놓은 창고방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저장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물건이 넘쳐나고 물건 값이 싸고 구매가 편리한 시대에는 물건을 쟁여놓지 않는 것이 솔직히 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기가 특별한 현상으로 주목을 받고 책으로 출간되고 <신박한 정리> 같은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축적하는 데에는 놔두면 다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쓸모에 대한 가치나, 버리면 다시 사지 못할 것이라는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이 물건과 관계된 기억과 경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구의 경우에는 물건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친구는 못 보던 사이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졌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과연 생의 의지가 남아있긴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학계에서는 정도가 심각한 경우 정신건강상태뿐 아니라 불결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건강과 위생을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자기 방임’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저장 강박행동의 특성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감정적 애착, 그러니까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한다는 설명도 있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의사결정 자체가 어려워서 회피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었다. 갖고 있는 물건들이 다 추억이고 소중하고, 심지어 비싸게 주고 샀기 때문에 못 버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것을 꺼내고 직면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그 물건의 양에, 묵혀져 있던 시간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 돈으로 산 물건을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고 버리려면 과거의 내 구매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인정을 해야 하는데, 이 자기부정의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는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을 10권쯤 읽고 나서야 겨우 결심을 할 수 있었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 물건을 수납장에서 꺼내 버리는 것까지 다시 몇 년이 걸렸다. 그 몇 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기, 심플 라이프 등의 책을 읽으며 정신교육, 아니 자가 세뇌를 했다.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요가였다. 우선 내 몸이 건강해지니 그나마 힘을 내기가 수월해졌고, 동시에 그때 공부하고 있던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요가를 한다’고 말할 때의 요가 동작들은 파탄잘리가 말하는 마음의 제어를 위한 요가 수행 8단계 중 세 번째 단계인 ‘아사나’를 말한다. 아사나 이후의 단계로는 호흡, 명상이 있으며 그 최종 단계는 깨달음, 해탈이다. 그렇다면 요가의 움직임 이전의 두 단계는 무엇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도덕적 규칙(야마)과 ‘해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 행위(니야마)가 그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야마로는 비폭력, 거짓말하지 않음, 도둑질하지 않음, 금욕, 탐하지 않음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아파리그라하’라 부르는 ‘탐하지 않음’은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것, 쌓아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게 바로 심플 라이프이고 미니멀리즘이다.
정리 컨설턴트에게 친구네 집 정리 견적을 의뢰해봤다. 기본적인 정보를 넣은 온라인 견적서상으로는 20평대 아파트에 5~6명의 직원이 배치된다고 하였고 기본요금이 120만 원이라고 했다. 물건 정도에 따라 견적이 달라지므로 방문견적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건 받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집은 몇 년간 치워지지 않았던 집으로 수납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더블’을 불러도 군말 없이 지불해야 할 상황이다. 이미 정리 컨설턴트에게 의뢰해 정리해본 지인에게 듣기로는, 정리를 위한 수납함 구매비용이 추가로 들어서 정리비용 270만 원에 수납함 비용 100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으로 잡아도 친구 A네 집은 200만 원, 어쩌면 300만 원의 견적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우리가 하자. 그렇게 큰돈이 어디 있어?”
친구 B와 나는 걸레, 수납을 위한 정리함, 그리고 큰 종량제 봉투 여러 장을 챙겨서 만났다.
마음의 준비를 하도 단단히 해서인지, 그동안 미니멀리즘 정신교육을 똑바로 받아놔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 집을 하도 비워서 청소에 이골이 난 것인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반나절 만에 뚝딱 비워냈으니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 것이 아니니 굳이 물건을 들고 추억에 잠기거나 매몰비용을 계산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인가?’ ‘다시 쓸 일이 있는가?’ 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버리면 끝이었다. 사람들이 정리 컨설턴트나 정리 업체를 고용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닐때라야 가능하다.
나도 안다. 심리적 요인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이 집에 물건이 또 쌓일 것이라는 것을. 다음번에는 친구가 스스로 물건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스스로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면, 마음도 정리할 수 없다. 친구가 빨리 건강해지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