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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Dec 08. 2019

한여름의 세일링, 한겨울의 세일링




구름 모양, 나뭇잎 색깔, 물소리 같은 기분 좋은 가벼운 자극 soft fascination에는 회복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인파, 건물,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에서와는 달리 자연의 나무, 풀, 동물 같은 다양한 환경 요소는 뇌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집중하도록 할 뿐 아니라, 자연에 노출되면 심리적 행복감이 높아지고 스트레스 요소와 마주해도 쉽게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요트 세일링 실력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물에 빠져 덜덜 떨거나, 뙤약볕 아래에서 시꺼멓게 타면서도 여름 내내 주말마다 요트를 타러 다니는 스스로가 신기해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찾은 답은 적당한 바람이 만든 물결의 리듬과,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에서 정직하게 내리쬐는 태양이었다. 그러니까 자연에 노출되어 받는 자극. 그중에서도 햇빛 말이다.     


그동안 참 많은 것들을 두려워했었다.


여름에는 피부가 타니까, 겨울에는 얼굴이 트니까 달리기를 실내 러닝머신에서만 했다. 산은 위험하니까 실내 클라이밍장에서만 암벽등반을 했다. 바다 수영은 힘드니까 실내 수영장에서만 수영을 했다.     


하얀 피부가 미의 기준인 한국에서 (여자는) 집 앞에 잠깐 나갈 때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도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고 배웠다. 형광등의 자외선에도 기미가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여름 내내 수없이 물에 빠지고 선크림이 지워지며 온 몸이 한차례 타고나자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피부과 시술로 이 기미 잡티를 빼야 한다고 주변에서 끊임없는 잔소리를 듣지만, 잘 보이지도 않는 눈가의 기미 잡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연의 햇빛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렇게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포기하고 여름 내내 햇빛 친구와 재미있게 놀았다.     



겨울이 되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종종 요트를 타러가는 것이 두려워지곤 했다.


이번 주는 서울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갔었고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요트를 타러 나가는 곳은 보통 서울보다 3~4도 정도 기온이 낮다. 여기에 (찬)바람을 굳이 찾아다니고, 온몸으로 맞고, 심지어 물에 젖어가며 요트를 탈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요트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갖고 들떠서 갔을 텐데, 이미 겨울비를 맞으며 세일링을 해보기도 했고, 비가 온 직후에 젖은 요트 위에 앉아서 물에 젖은 시트를 잡고 세일링을 한 후 하루 이틀정도 손끝이 얼얼했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 그랬다.     


역시나 요트는 밤새 얼어 선체에 물을 뿌려 녹이고 빗자루로 얼음을 긁어내어야만 했다. 지난번에는 잘 묶어놓고 간 시트의 매듭이 일주일동안 얼어서 안 풀리거나, 손이 꽁꽁 얼어서 시트의 매듭을 제대로 못 묶어서 서로 해보라고, 매듭하나 못 묶는 바보가 된 팀원들끼리 깔깔대기도 했었다.     


일기예보는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7도라고 했다. 최대한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기능성 옷들을 골라 여러 겹 입고, 장갑, 모자, 마스크, 그리고 핫팩까지 챙겼다. 그리고 세일링을 했는데 안 추웠다! 바람이 들 틈 없이 보온을 잘 하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몸에 열을 내서이기도 하다. 어쩌면 기온은 낮았지만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오늘도 나오길 잘 했다"라는 말이 나왔다.     


겨울에도 얇은 스타킹 한 겹에 치마입고, 구두, 그것도 하이힐을 신고 나와서는 “추워, 추워” 를 입에 달고 살았던 적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집도, 사무실도, 레스토랑도 실내는 따뜻하다. 상황은 같지만 지금의 나는 기왕이면 가볍고도 보온성이 좋은 소재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목도리, 장갑, 모자와 같은 악세서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센스가 있으며, 상황이나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나의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용기를 갖췄다. 그리고 몸에 열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 가능한 편안한 신발을 선택할 줄도 안다. 그렇게 나의 몸이 예쁘고 날씬하게 보이는 것 대신, 나의 몸이 편안하고 나의 몸에 이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트를 타며, 조금씩 나답게 사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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