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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ug 11. 2020

다시, 딩기요트를 타며 생각한 것들




#1


"세일 모양을 하나도 안 보고 있네. 텔테일이 안 날리는데."

텔테일 telltales은 세일에 붙어있는 한 뼘 길이의 털실인데, 바람에 맞게 세일 트림이 제대로 됐는지, 적합한 코스로 달리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이를테면 아날로그 계기판 같은 것이다. 세일러라면 바람과 물의 컨디션에 맞게 세일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풍향과 파도의 변화에 따라 코스를 잡아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세일링을 하면서 세일 모양을 안 본다는 것은, 그리고 텔테일을 못 날린다는 것은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날이 더웠고, 비가 많이 왔고,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그리고 스키퍼 언니가 깁스를 했고, 라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한 달 만에 요트를 탔다. 요트를 알게 된 후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여름이 왔고, 처음 요트를 시작할 때처럼 반팔, 반바지를 입은 채 그때 타던 딩기요트를 탔다.

배에 올라타자마자 균형을 못 잡아 출발도 못 해보고 물에 빠졌지만, 이내 요트를 컨트롤해 폰툰에서 빠져나왔다. 붐뱅, 커닝험, 아웃홀 등의 시스템 조작을 다 잊어 메인시트와 러더만으로 몇 번 움직이다가, 금세 시스템도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달리는 것 같다가도 별안간 세일이 바람을 받지 않아 움직일 수 없는 노고존 No go zone에 빠지면 머릿속이 새하얘지곤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선생님이 '세일'이라는 키워드를 던져준 것이다.

‘세일에 바람 받게 하기’

내가 해야 할 것은 이것 한 가지였다. 러더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세일을 풀거나 당기던 어떻게 해서든 세일이 바람을 안게 해야 노고존을 벗어나 다시 세일링을 시작할 수 있다.


종종 많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기본을 놓치곤 한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욕심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앞서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2  


“왜 자꾸 속도를 줄이는 거예요?”

세일에 바람을 제대로 받아 속도가 날 때마다 이를 즐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이곤 하는 모습을 발견하신 선생님이 물으셨다.

“무서워서요... 배가 뒤집혀서 빠질 것 같아요.”

선생님은 속도를 줄일수록 고꾸라질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고, 내 우려와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다.

요트는 풍력과 양력을 동력으로, 항력과 양력의 합이 발생시키는 힘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세일이 바람을 받는다면 그에 맞는 세일트림을 해야 보트 스피드가 올라가고, 그것이 곧 세일과 보트의 균형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한 세일링이다. 만일 지금 부는 바람과 맞지 않는 세일트림, 예를 들어 세일을 많이 놓아서 항력이 올라가거나 너무 당겨서 양력을 잃게 되면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혀지니 안전하지 못하다는 설명이었다.

나의 경우는, 세일에 바람을 한껏 받았으니 시트를 더 당겨 스피드를 타고 나아가야 하는데, 정작 즐겨야할 스피드에 겁을 먹고 세일을 풀어버리니 항력이 올라가서, 힘의 진행 방향이 바뀌며 배가 고꾸라지고 나는 물에 처박히게 되는 것이다.


이제야 그동안 자이빙을 할 때마다 내 배만 뒤집히던 이유를 이해했다. 센 바람에 올라타 이를 이용해서 방향을 전환했어야 하는데, 바람이 여전히 센 상태에서 (무섭다고) 급박하게 속도를 줄여버리니 세일에 걸리는 부하가 커졌던 것이다. 배는 휘청하게 되고 나는 줄곧 물에 빠졌었다.

요트를 타는 것, 삶을 사는 것, 나에겐 어느 것도 만만치 않고, 항상 무섭다. 인간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원인이 무지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배우려고,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요트를 타고 온 날이면 자꾸만 내 실수를 돌아보고 되뇐다.


두려움에 도망치거나 저항하는 데 쓰는 힘을 배우고 이해하는데 쓴다면 나도 조금 나은 세일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3


“메인시트 살~~ 살 놓아요, 사알~~~ 살”

힐이 걸렸을 때는 메인 시트를 풀어주어서 세일을 열어주거나 러더를 밀어서 풍하로 떨군다. 바람의 양과 방향을 기민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컨트롤하기에 겁이 날 정도로 심한 힐이 걸리기에 힐을 줄이려고 메인 시트를 과감하게 풀어주니 세일이 너무 열리고, 풍하로 방향을 전환하래서 러더를 확 당기니, 뱃머리가 휙휙 돈다. 다시 발란스를 맞추겠다고 풍상으로 각을 올리기 위해 러더를 쭉 밀면 이번에는 역힐이 걸려 배가 한쪽으로 쏟아지며 출렁인다. 배가 이쪽으로 기우뚱 저쪽으로 기우뚱하느라 안정감 있는 세일링을 할 수 없게 된다.

‘세일을 섬세하게 조절하기, 러더를 예민하게 다루기’

검게 그을린 건장한 체격의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섬세함과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믿음이 갔다.

요트라는 물체를, 바람이라는 자연을 다루는데도 섬세함이 필요한데, 감정이 있고 사유를 하는 사람을 대하는 건 어떨까. 상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요점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쿨한 것이라 믿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까. 마음은 요트보다, 바람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거늘.






글: Edi

그림: Sama (https://instagram.com/y.s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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