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재미

07학번의 막사가 우아한 홈술이 되기까지

by 박붕어

안주는 필요없고, 기분에 따른 막걸리와 그 막걸리를 담기 좋은 잔을 고른다. 글쓰기 노트를 옆에 두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본다. 그리고 절냄새 나는 인센스를 켜고 나를 위한 고요한 시간을 준비한다.

왜 안주를 먹지않는가 하면, 안주로 배를 채우기가 아깝단게 표면적인 핑계이고, 실은 청량한 자연탄산이나 꾸덕한 크림의 막걸리 목넘김을 더 감각적으로 느끼고 싶어서이다. 안주를 씹은 후 막걸리를 마시는건 그저 입 안을 헹구는 것이지, 본연의 막걸리 맛을 즐길 수가 없다는게 이유다.


다른 술들은 오래 묵힐수록 좋은게 많지만, 막걸리는 생이 많이 붙는 술이라서 부지런히 비워내야 한다. 살아있는 술이라는게 매력이라 술장고가 비면 또 채우는 맛에 새로운 걸 자주 마실 수 있다는 게 묘미가 된다. 이 생생한 막걸리를 마시면 내 안의 염세적인 긴장과 꼿꼿하게 굳어있는 뒷목이 흐느적 풀어지며,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찌릿하고 우스운 감각이 나를 안정시킨다. 허참, 생 유산균이 좋긴 좋구나. 날 거 좋아하는 내 입엔 최고의 술이 막걸리 일수밖에 없단 결론이다.


최애를 막걸리로 꼽는덴 긴 음주세월이 걸렸다. 07년생이 올해부터 술집간다는데, 07학번인 나도 그때 술집 많이 다녔다. 근데 왜 그렇게 천탁을 드나들었는지, 막사도 많이 마시고, 번데기와 얄팍한 찌짐들로 배를 채웠다. 또 시간이 흘러 서면 파고다 뒤에서 비오는 날 빈대떡이랑 먹기도 하고, 족발이랑 궁합맞다고 앞다리를 쥐어뜯은 기억도 난다.


급기야 2020년 전후로 전통주가 주류 문화 트렌드로 등극하면서 많은 지역의 막걸리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운 좋게 전통주와 탁주는 택배도 되기때문에 전국각지, 제주 것들 마저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어느새 막걸리에 익숙해진 입이 되어 이제는 짜달시리 안주가 불필요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안주도 없이 어떻게 막걸리만 마시냐고? 오. 나에겐 이 고요한 밤공기와 절 냄새, 그리고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문장들이 가장 호사스러운 안주입니다. 07학번의 치기 어린 막사가 지금의 우아한 홈술이 되기까지, 나의 간과 지갑은 꽤 고생했지만 덕분에 인생의 농도는 막걸리처럼 진해졌다. 오늘 저녁도 밥 대신 탁주 한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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