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성장 드라마다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를 통해 먼저 관람한 영화입니다
<청설>은 반전이 있는 영화지만 그 내용은 도입부에서 이미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따라서 <청설>은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니 샤오펑, 동생 양양, 그리고 양양을 좋아하는 황티엔커의 성장이다. 그렇다. <청설>은 로코의 외피를 두른 성장 영화다.
청각장애인올림픽대회에 나가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인 샤오펑. 양양은 그런 언니의 꿈이 곧 자신의 꿈이라 믿고 각종 알바들로 하루를 빼곡히 채워가며 돈을 번다. 언니가 수상하면 그 돈으로 빚을 갚고 한시름 놓을 수 있으니 그전까진 양양이 돈을 벌어 샤오펑의 뒷바라지를 하는 거다. 물론 그전엔 샤오펑도 일을 했었지만 올림픽 준비 기간에 코치와 스케줄을 맞추려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는 자매의 아버지는 너희를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있다는 둥 정신적으로 힘이 될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듯하다.
황티엔커는 수영 연습을 하는 샤오펑의 훈련팀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배달원으로, 양양을 남몰래 좋아한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양양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티엔커의 모습이 풋풋하다. 티엔커를 연기하는 펑위옌은 조각미남이지만 한국 드라마나 영화라면 흔히 했을 재벌2세의 설정이 없어서 <청설>은 담백하다.
게다가 이 영화엔 악인이 없다. 주인공들에게 갈등의 상황을 주기 위해 어떤 사건이 터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엔 각 주인공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티엔커의 부모도 청각장애인 며느리에게 열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티엔커처럼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줄 아는 인물들이며, 양양과의 첫만남을 위해 그들이 준비한 정성들은 관객의 마음까지 빼앗기에 충분하다.
‘청설’이라는 대만 제목 외에 영어 제목은 ‘hear me’ 다. 한자 풀이로는 말을 듣다, 이야기를 듣다 정도가 될 테고 영어 풀이로는 내 말을 들어줘, 내 얘기를 들어줘 정도가 될 것 같다. 주인공들은 수화 외에도 MSN 메신저와 문자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영화는 일견 소통에 대한 은유로도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읽는 이에 따라 영화의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소통과 불통과 반전을 거쳐 종국엔 성장한다. 샤오펑은 본인의 훈련비를 스스로 벌며 4년의 시간을 견뎠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금메달을 땄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샤오펑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양양이 계절이 바뀌면 날아가는 물새처럼 자유로워졌으니까, 더 이상 그녀의 꿈을 훔치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꾸게 되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희생은 때에 따라 헌신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샤오펑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양양도 자란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언니의 꿈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테다. 샤오펑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모두가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녀를 응원할 테니까, 언니의 꿈을 자신의 꿈이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않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귀여운 티엔커도 지질한 연애의 과정 속에 한뼘 더 성장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애만큼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또 있을까. 그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방식으로 양양을 사랑했으므로(그가 자각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앞으로도 그는 행복할 거다.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이미 충분히 사랑하는 이들이고, 사랑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로맨스코미디 장르엔 크게 관심이 없어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청설>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2009년에 만들어져 재개봉한 영화답게 거친 필름의 질감,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패션과 휴대전화, 달리는 스쿠터 사이로 펼쳐지는 대만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인공들의 배경에 맞게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린 의상과 분장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영화 중후반, 양옆에 앉아 계신 남자분들께서 모두 눈물을 쏟아내시는 걸 보았다. 아마도 ‘hear me’라고 속삭이는 <청설>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들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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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