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였다
베란다에 서서 아파트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아파트 정원과 맑은 하늘이 밖을 나가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끈'
심장이 또 옥죄여 왔다. 나는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의사가 가르쳐 준 대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심장 CT에는 이상이 없어요. 그렇지만 혈전 현상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베트남 의사는 유창한 영어로 말했지만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직업은 번역가였지만 의학 영어는 낯설었다.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가면서 더듬더듬 내 증상을 설명했던, 그날 밤의 응급실이 떠올랐다.
코로나 19가 세계를 휩쓸었던 2020년과 2021년, 나는 베트남에 있었다. 1차 백신도 베트남에서 맞았는데, 아스트라제네카였다. 백신을 맞은 이틀은 열이 39도까지 솟고 침대 밖을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아픈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더 큰 문제는 백신을 맞고 나서 왔다. 주기적으로, 심장에 통증이 느껴졌다. 누군가 손아귀에 힘을 꽉 주어서 내 심장을 잡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 이때는 베트남은 고강도의 락다운을 실행하고 있었다. 한 달 넘게 집 밖을 나서지 못해서 심리적인 압박까지 심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백신의 부작용으로 혈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20대의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막았다는 기사를 보고는 걱정이 더 커졌다. 락다운 때문에 나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참으면 괜찮겠지, 하면서 미련하게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다가 숨을 쉬기 힘든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게 아닌가'
그 길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까지 가는 길목길목마다 공안이 멈춰 세웠다. 번역기를 돌리면서 응급실을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실에 가서는 PCR 검사를 하고 기다려야 했다. 응급실 밖에서 30여분 기다리고 나서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서 동이 틀 때까지 병원에 있었다.
의사는 CT에는 이상이 없지만 혈전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의료진이 부족하고 혈전 검사를 하려면 검사를 프랑스로 보내야 하는데, 배송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심호흡을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라고 말했다.
CT에 이상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마음은 찝찝했다. 응급실을 갔다 온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심장이 쥐었다 폈다 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고 며칠 후, 그날도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재택근무하던 노트북 앞에서 벗어나서 베란다로 나갔다. 푸른 하늘, 따듯한 호치민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생각했다.
'퇴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