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Jan 28. 2023

백수는 방역 택시 탈 돈이 없어요

인천 공항이 이렇게 휑하다니

2021년 10월 말, 한국에 돌아왔다. 거의 3년 만의 귀국이었다. 코로나19가 강타한 한국은 너무 달라서 낯설었다. 북적북적하던 인천 공항은 휑했고, 한국에 들어가는 데만 몇 개의 절차를 걸쳐야 했다. 베트남에서 백신 접종한 확인서를 보여줘야 했고, 자가 격리를 위해 집에다 전화를 걸어야 했다.


내 기억에, 당시 백신 접종을 2회 차까지 맞으면 자가격리가 면제될 수 있었지만, 나는 아스트레제네카의 부작용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2차를 맞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역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달려야만 했다.'


3 만의 입국. 설렘보다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자가 격리하는 사람은 일반 버스를 타지 못했다. 지하철도 이용하지 못했다. 선택권은   가지, 방역 버스를 타거나 방역 택시를 타거나였다. 방역 택시는 10  정도라는 후기를 보았다. 이제 직장이 없는 백수에게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나는 방역 버스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착륙 시간으로부터 방역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약 40분이 남아있었다. 입국 절차를 밟으면서 계속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았다. 달려서 방역 버스를 타면 8만 원은 아낄 수 있는 터였다.


돌이켜 보면 귀국의 즐거움보다는 추운 기억이 강했다


그날의 인천 공항 기억은 추웠다. 사람도 적었고 직원들도 어딘가 경직되고 피곤한 내색이었다.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았고,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일까? 아니면 더운 나라에 있다가 와서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었을까? 한국의 익숙하고도 차가운 모습에 약간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 방역 버스를 탔다. 오로지 나랑 다른 사람 한 명만 있는 버스에서 인터넷도 되지 않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방역 버스는 나를 보건소 앞에다 내려줄 것이다. 나는 PCR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새벽 비행기를 타서 온몸이 찌뿌둥했다. 한국의 추위도 어색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고속도로가 익숙한 편안함을 자아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이제 집으로 간다.









사진: UnsplashSafwan Mahmud

이전 05화 가기 전에 밥 한 끼라도 맥여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