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 일기예보를 꼭 챙기게 됩니다. 텃밭과 정원에 물을 줄지 말지, 마당에 이불을 널지 말지, 밖에 세워두는 차를 세차할지 말지.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확실히 도시에 비해 시골에서는 자연이 일상에서 크게 느껴집니다.
겨울이면 특히 그렇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거나 눈 예보가 있으면 미리 챙겨야 할 것들이 늘어나거든요. 그래서 어제처럼 눈 예보가 있는 날이면 시골 사람들은 일찍일찍 귀가를 합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할 무렵 집에 들어와서 자동차 유리창에 커버를 덮어놓고, 저녁을 먹고, 씻고, 원고를 좀 보다가 밖을 내다봅니다. 눈이 아주 얄팍하게 쌓이다 말았네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웬일. 간밤에 10센티 가까운 눈이 내렸군요. 눈이라는 놈은 비와 달리 내릴 때 소리가 없어서 매번 이렇게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예쁘긴 한데, 나갈 일이 걱정이네요.
옷을 챙겨입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밖에서는 벌써 드르륵 드르륵 눈삽이 땅을 긁는 소리가 납니다. 이웃집에서 눈을 치우고 계신 거죠. 아직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서둘러 마시고, 두꺼운 어그부츠와 마스크를 장착한 채 문 밖을 나섭니다. 눈치 챙겨야지요. 이웃들이 치워줄 테니 나몰라라 하는 건 시골에선 안 될 말입니다.
일단 빗자루로 대문까지 가는 길부터 내고...
대문에서부터 진입로를 따라 큰길까지 일단 눈삽으로 한 줄 쭈욱 밀고 나갑니다. 이제 이 길을 기준으로 눈삽을 이용해서 좌우로 눈을 밀어줍니다. 앞집 어르신은 벌써 저 앞 큰길에서 눈을 밀고 계시네요.
작년에 폭설이 내렸을 때는 젖은 눈이어서 무겁기도 어찌나 무겁던지, 동네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도 부러졌더랬지요. 비닐하우스 피해도 꽤 많았고요. 그런데 오늘 내린 눈은 마른 눈이네요. 보슬보슬 가벼워서 밀리기도 잘 밀립니다. 잘 안 뭉쳐지는 눈이라 아이들은 싫어하겠지만, 치우는 사람은 고마울 뿐.
몇 번 드륵드륵 밀고 나니 어느 정도 치워졌습니다. 빗자루로 잔설까지 처리하고 나면 완료입니다. 아직은 좀 미끄럽지만 해가 높이 뜨면 금방 녹을 거예요. 이곳은 비탈이긴 하지만 다행히 볕이 잘 든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도로를 다함께 치웠다면 이제 집 안을 치워야 할 차례. 잔디마당이야 그렇다 치고 데크 위에는 좀 치워야 돌아다닐 길이 생기거든요. 아스팔트와 달리 나무데크 위의 눈은 금방 녹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다 치워야 하는데, 안 그러면 나무가 빨리 상하거든요.
그렇지만 연약한(?) 저는 일단 돌아다닐 통로만 만들기로 합니다. 이럴 때 힘좋은 달씨가 있으면 파파팟 하고 순식간에 해치워줄 텐데, 출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이럴 때면 내가 왜 데크 넓은 집을 샀을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가을이면 눈 치우기 바쁘고, 봄이면 오일스테인 칠하느라 바쁜데... 뭐, 그래도 여름과 가을에는 고기 구워먹는 재미가 있으니 좋지만요.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마무리는 이곳, 텃밭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여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면 정말 큰일나니까요. 겨울이라 텃밭에 작물은 없지만, 음식물 쓰레기 발효통이 있어서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음쓰통 들고 가다가 넘어지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특별히 신경써서 싹싹 쓸었습니다.
눈을 치우고 나니까 허기가 집니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계란과 양파절임을 얹은 토스트. 수고했으니 좀 있어보이는 걸 먹고 싶었지만.. 음.. 비주얼이 생각과는 좀 다르군요. 뭐, 어쨌든 맛있게 먹었으니 됐습니다.
보기와 달리(?) 긍정적인 성격의 달씨는 눈 치우는 일을 '유산소 운동'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삽질과 빗자루질만한 전신운동도 없다면서요. 하긴, 허리힘이 중요한 동작이니 아랫배에 힘을 꽉 주면 코어운동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눈 치우기가 싫어지면 마음속으로 "배에 힘 주면 운동, 안 주면 노동"을 외치곤 합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데에 은근 도움되는 주문이랍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생각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꿔먹는 게 도움이 되긴 하더군요. 어쨌든 이것도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에 집중하면서 최대한 즐겁게 일하는 겁니다.
자기위로라 해도 좋고, 원효대사 해골물이라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똑같은 일을 하면서 우울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즐거운 게 나으니까요. 세상만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 어쩌면 눈 치우는 사소한 것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