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은 순간 희었던, 그래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늦은 리뷰, 한강의 단편집 [흰]

by 김현임

유한한 삶의 연속에서 끊임없이 나고 사라져가는 것들. 가장 짧은 순간 희었던, 그래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모든 흰 것들의 이야기.


유난히 오래 읽었다, 겨우 129페이지. 이틀이나 걸려서. 한 두 시간이면 차 마시면서 벌써 덮었을 책이지만그렇게 읽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꼭꼭 씹어 읽으면 분명 또 새로울 문장들. 아마 두 번째엔 삼일, 세 번째엔 오일이 걸릴지 모르겠다. 다시 볼 수록 더디 읽히는 글이 129페이지나 된다.


한강의 문체는 그 어떤 작가의 것보다 차분하고, 차가우며, 가만히 들여다 보아야 가슴으로 스민다.

그의 문장은 언제나 담담하지만 슬픔에 가득 차 있고, 서정적임과 동시에잔인하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양극을 그는 늘 동시에 써내려 왔다.

마치 슬프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

끝없는 고통을 글로서 풀어내야만 다시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어쩌면그가 가진 슬픔의 본질은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상흔의 장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라 생각해 보았다. 만물의소생이 아우성치는 가운데 봄이 왔음을 차마 반기지 못하는 그곳 5월의 기억. 지독한 슬픔은 오히려 이성을 부추긴다. 나는 그의 글에서 그 흔적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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