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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Nov 06. 2024

마흔, 재정립의 시간

내가 벌써 마흔이라니!

여자들에게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 의미가 여러모로 큰 사건이다. 보통 십 대에서 이십 대가 되었을 때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설렘이 있고, 내 경우엔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바뀌었을 때도 밝은 희망 같은 게 보였다. 그리고 사십 대를 목전에 둔 지금은, 음.. 이런 감정을 절망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나이에 이렇게 유난을 떠는 것이 이미 한참 그 나잇대를 잘 살아내고 계신 분들이 보면 꽤 언짢으시겠지만(사십 대도 사람 사는 곳이야 인마!), 4의 고비는 좀 두렵다. 어째서인지 사십 대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삶의 낭떠러지 앞으로 떠 밀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유예 없이 삶에 조금씩 떠밀려다 가다 보면, 저마다의 속도에 따라 한계가 치달을 때가 오는데, 나에게 그 인계점이 마흔 인 듯했다.

막 서른이 되었을 때도 이런 낭떠러지를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곳이 두 발을 안전하게 묶고 기꺼이 몸을 던지는 번지점프대처럼 느껴졌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처럼 삼십 대가 매우 스릴 있게 다가왔다. 그때는 용기 있게 몸을 던지더라도 원한다면 제자리로 되돌려줄 단단한 안전망이 내면에 깔려있었다. 자칫 한 발만 삐끗해도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지금의 불안감이 10년 전에는 익스트림한 인생을 만들어 줄 에피소드처럼 반가웠다.


마흔이 이토록 시린 이유는 뭘까?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경해 온 어른들의 찬란함은 삼십 대 때 가장 빛이 났다. 하지만 그들도 10년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더 이상 빛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외면한 것이었다는 건 요즘 와서 든 생각이다. 그동안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쫓았다면 이제야 서서히 그 빛을 지켜온 고달픈 그림자가 보인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나이에 도달하고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부채감과 헛헛함이 밀려들었다. 어쩌면 가장 빛날 수 있는 시기에 스스로의 빛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


내 삶이 자꾸 오류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여야 한다는 어리석은 착각 때문이다. 스스로의 인생에서는 누구나 주연이지만, 모두가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는 없다. 우리 대부분은 조연이나 촛대(요즘 ‘정년이’라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없는 역할)로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렇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해내다가 운이 좋게 주인공으로 눈에 띌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조연과 촛대의 길고 지난한 역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컴컴한 어둠 없이 별이 빛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시간은 어둠을 견디고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가 분명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쫓으며 살아온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어둠을 외면하기가 대체로 수월했다. 결혼 같은 개인사나 커리어의 변곡점을 겪으며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어둠의 터널을 진득하게 체감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내일이면 흩어질 걱정과 불안, 방황과 혼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른들의 세상에는 어둠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흔을 앞두고 불현듯 내 눈앞에 깜깜한 어둠이 보이는 것은, 스스로 발광하던 내면의 빛이 꺼져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보다 어쩐지 발목을 붙잡는 늪이 끝없이 펼쳐졌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내 앞에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열고 나가야 할 사십 대의 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 문을 열고 나가, 저벅저벅 어둠을 걸어야 한다. 이제는 신발을 고쳐 신고, 조금 늦더라도 내 앞에 벽을 부수고 나갈 수 있길. 더 이상 내가 빛나지 않더라도, 함께 어둠을 걷는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빛이 되어줄 수 멋진 그림자를 만들 수 있길. 부디 마흔의 시간이 어둠 속에서 나를 재정립하는 시간이 되길. 마흔은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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