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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Oct 16. 2023

취집 말고 취업  

인생은 본인 책임입니다

당신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출산과 육아를 핑계로 절대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 능력을 단단히 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만의 밥벌이를 계속해나가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 무엇보다 너무 빨리 일을 그만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결혼 후에도 출산과 육아 그리고 일까지 멋지게 해내는 슈퍼우먼들도 많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사실 굳이 그렇게 바쁘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출산과 육아만으로도 버거웠고, 직장까지 다닌다는 게 어림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도와줄 친정과 시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뿌리칠 수 없이 대단히 많은 연봉을 받는 직장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도 쉽게 일을 포기할 수 있었다. 물론 전업주부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라고도 판단했다. 나는 항상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을 줄 알았고, 사랑하는 아이를 예쁘게 키우고, 알뜰하게 살림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중에 내가 이리도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라고는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나 결혼 후 환경 탓을 하며 일을 포기하려는 이가 있다면, 혹시 취업 말고 취집을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뺨따귀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제발 정신 차리라고. 그 길을 걸어온 경험자로써 나는 지금 내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싶으니까 말이다.


"본인 능력을 키워 '취집 말고 취업'을 하세요. 제발."


"출산, 육아로 인해 절대 경력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 인생은 남편도 아이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본인 책임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결혼부터 출산, 육아는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중대한 사건 들 속에서 꼭 본인이 모든 짐을 짊어지지 말라는 소리다. 모든 여성들이 남편이 혹은 친정, 시댁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가길 바란다. 나는 내 의지로 결혼도 했고, 출산과 육아를 했다. 스스로 전업주부도 되었지만 내 가치를 높이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때로는 주변에 도움도 청해보고, 내 커리어를 위해 욕심도 내보고 했어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위태롭다. 육아, 살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졌다. 그것이 나를 정말 괴롭게 한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면 남편의 벌이 없이는 가계가 무너지고, 이혼을 하게 되면 생활이 막막해진다. 꼭 경제력이 아니더라도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제외해 보면 어떨까. 38세의 사람, 하나로만 봤을 때 나의 정체성은 미미하다. 나는 요즘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는 항상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단한 벌이가 아니더라도 여자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언니, 진짜 다시 일해.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형부한테 좀 일을 줄이라고 하고 언니 일을 찾아. 주변에 애도 맡기고 말이야. 안 그러다 큰코다쳐. 여자가 일이 있어야 나중에 당당해. 지금이야 애들이 어리니까 그렇지 애들 크면 형부도 은근 일하길 바랄 거고, 요즘 애들도 엄마가 일하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렇긴 한데, 지금 애도 너무 어리고 당장 회사로 돌아가면 도우미 쓰고 뭐 어쩌고 하면 남는 거나 있겠어. 애도 종일 맡겨야 할 테고. 남편 일 줄 이는 거 도 없을 테고. 당장을 힘들지 않을까 싶어"


"애들도 다 적응하고, 어떻게든 다 된다니까. 예전 일을 다시 하라는 게 아니라 뭐든 늙어서도 할 수 있는 돈 버는 기술이 있어야 해"


그녀는 남편이나 아이로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충고할 때마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그 생활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교대근무를 하는 병원 일에 지쳐 잠시 일을 쉬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각종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 크고 복직을 하였는 데, 몇 달 되지 않아 일을 그만뒀다.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던 그녀는 어린이집에 의존하며 일을 했는 데, 아이가 너무 자주 아팠던 바람에 일에 자주 지장을 줬다. 아이도 아직 어려 엄마의 부재를 힘들어했고, 직장과 어린이집에 항상 조아렸던 그녀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그러고 나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다른 일을 찾았다. 결국은 시댁을 설득해 같은 동네로 모셔왔고, 아이를 맡긴 채 직장을 다니고 있다.  병원대신 퇴근이 비교적 빠른 보육교사로 직종을 변경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시부모님께 아이 맡기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일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막 초짜 보육교사이기 때문에 월급은 적지만 자기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울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그녀가 열심히 자신의 삶을 위해 나아갈 때 나는 무엇을 했나. 똑같이 애 맡길 곳 없던 전업주부였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냈다. 나는 그저 넋 놓고 안일한 일상을 살았다. 그녀가 보육교사 자격증이라도 같이 따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 아이 보는 것도 힘든 데, 무슨 보육교사냐고 말이다.


내가 만약 몇 년 전 그녀와 같이 보육교사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기술을 배우든 파트타임으로라도 내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어떤 공부든 기술이든 배우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상황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 같다. 나는 몇 년을 열심히 살아온 그녀와 나의 차이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내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요즘 다시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단 뭐든 하려면 건강해야겠다 싶어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해나간다. 작은 변화라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은 살아가기 위해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전업주부 10년 차가 되어 보니 무엇보다 '경제력'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전업주부 열심히 살아도 '돈'이 되지 않다 보니 크고 작은 제약이 생긴다. 진짜 세상일 모른다는 지인의 말처럼 막말로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을 할 수도 있고, 남편이 병에 걸려 일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가정하에 나는 과연 가장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아이를 책임지고, 내 가정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모든 여성들이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부디 자신을 가치를 높여 훨훨 날길 바란다. 아무도 당신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도 당신도 홀로 오롯이 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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