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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Sep 13. 2023

나는 왜 이혼하지 못하는 가  

안락한 삶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고 말았다

"J야, 그 정도면 이혼해. 너 그러다 암 걸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참고 사니."


나의 베프는 당장 이혼을 하라고 했다. 나의 속사정을 잘 아는 그녀는 가차 없이 이혼에 손을 들어줬다. 친정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전화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택시 탈 때마다 말을 거시는 기사님은 그날따라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차에 타면 짜증을 내기 바쁘던 아이도 얌전히 내 곁을 지킬 뿐이었다.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지독히도 고요한 택시 안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이혼할 수 있을까"


"무슨 멍청한 소리야.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흠도 아니고, 잘 살 수 있어"


"아이는 어쩌지. 나 혼자 아이 키우면서 잘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데, 아이는 아빠 한 테 놓고 오는 게 좋겠어. 너 친정 도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면서 그 예민한 아들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니. 니 마음은 알겠는 데 현실적으로 엄청 힘들 거야. 너 일한 지 도 오래됐고 자리 잡으려면 정말 힘들 걸"


"나 정말 아이는 포기 못해. 그렇다고 그 사람 하고도 못살겠고"


"그럼 정말 힘들 각오하고 아이 데리고 이혼해. 너 그대로는 못살아. 힘들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살게 되고 아이는 금방 커"


이혼가정에서 자라온 나의 베프는 진작부터 나의 이혼을 응원했다. 허구한 날 싸우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받는 고통이 이혼가정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다고. 본인 엄마가 고생은 많이 하셨지만 이혼한 게 다행이라고 했다. 실제 나의 베프는 편모가정에서 누구보다 사랑받으며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친정에 큰 캐리어를 끌고 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퉁퉁 부은 눈을 보더니 거실에 있던 부모님이 흠칫 놀라신다.


"왜 왔어", "무슨 일이야"


부모님을 보니 또 눈물이 터진다.


"도저히 못살겠어"


거실에 앉아 펑펑 울었다. 엄마는 하염없이 우는 딸이 안타까워 같이 우셨고, 아빠는 화를 내셨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모두가 진정이 됐을 때 아빠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니 사람이다. 니가 데려가라"


몇 마디 안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를 아빠 없이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네가 남편 울타리 없이 산다는 게 뭔 지 아냐고. 막말로 이혼하게 되더라도 너는 내 딸이니까 받아 줘. 하지만 니 아들은 아니야. 이혼하려면 놓고 와. 아이 데리고 네가 혼자 살 수 있음 그렇게 하고. 엄마아빠한테 비빌 생각하지 마. 네가 니 아들하고 니 인생 책임질 수 있으면 나와"


엄마 역시도 그랬다.


"이혼이 쉬운 일이 아니야. 진짜 이혼하려면 아이 아빠한테 주고 너만 와. 그리고 새 출발해"


부모님은 생각보다 단호했다. 나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제발 받아줘. 아들하고 나 좀 받아 줘"


아이를 놓고 오라는 엄마아빠의 말의 숨은 속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딸이 고생할 까봐, 이혼을 막고 싶어서였겠지. 이혼하고 혼자 애 키우며 사는 삶이 얼마나 고된지 아시기에 말리시는 걸 안다. 알았지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이내 스스로가 한심했다. 받아달라니. 아이 인생도 본인 인생도 책임지지 못할 인간이 이혼하겠다고 짐을 싸서 나왔다. 이혼선언 후 고작 한다는 게 친정부모에게 우는 소리하는 게 다라니.


친정부모님이 도와주시기 않는 다면, 당장 아이와 둘이 살기는 실제 녹록지 않을 것이다. 30평대 새 아파트에서 나와 겨우 방한칸은 얻을 수 있겠지. 어찌어찌 취직을 하고 온종일 아이는 돌봄을 맡겨야 할 테다. 남편이 보내 준 양육비와 내가 번 돈을 보태 생활은 될 것이다. 하지만 여태 타던 외제차도 반납하고, 돈 걱정 없이 살던 생활도 반납해야 한다. 아이에게 풍요롭게는 해주지 못할 테고, 아이와 이전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다. 게다가 건강하지 못한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걱정이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만 몇 개인 비루한 몸뚱이로 아이와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무서웠다.


생각해 보니 이혼은 결국 '돈'이었다. 안락한 삶에서 나와 혼자 오롯이 설 자신이 내게 없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내가 너무도 끔찍했다. 결국은 아이와 윤택하게 살 돈이 없어서 이혼을 망설이다니. 여태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남편한테만 기대어 온 삶의 끝이 이렇게 하찮았다.


결혼에서도 이혼에서도 오히려 가장 중요한 '사랑'은 뒷전인 지 오래였다. 남편이 나를 그저 아이를 키워주고 살림을 해주는 '집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았으니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혼하겠다 뛰쳐나온 건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집을 나가도 별로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나 이혼이 준비된 사람처럼 당당했다. 그는 평소 애 키우는 전업주부는 쉽게 이혼 못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거기에 나도 해당됐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능력 없는 전업주부에게 이혼 따위는 사치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고, 나는 집안에서도 존재하는 권력의 서열에서 항상 숨죽이고 있었다.


집을 나온 지 며칠 후 남편이 친정을 찾아왔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는 여전히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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