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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Oct 11. 2023

며느리들은 왜 명절이 괴로울까?

누굴 위한 명절인가요

"참 불공평해"


"뭐가"


"여자들은 결혼하고 시댁 가는 건 싫어하잖아. 친정 가는 거랑 시댁 가는 횟수 자체가 다를 걸"


"왜 그런지 이유를 몰라?"


"여자들이 예민한 거 아냐. 명절 때도 어떻게든 자기 집 빨리 갈라고 안달 나고 말이야. 명절을 왜 그리 싫어해."


명절을 앞두고 시댁과 친정 가는 일정을 조율하면서 남편은 불공평함을 논했다. 기가 막혔다. 시댁에서든 친정에서든 차려주는 음식 잘 먹고 자고, 편히 누워있는 남편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여자들이 명절을 왜 싫어하냐고? 나도 몰랐다. 며느리가 되기 전까지는. 주부들이 왜 그리 명절을 힘들어하는지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명절에 평화를 가져온 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며느리 10년 차가 되니 명절 시즌만 다가오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여기저기가 아프고 신경이 곤두선다.


명절이 결코 즐겁지 않다는 것은 결혼하고 첫 해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친정보다 시댁을 먼저 방문했다. 시어머니는 대가족이 먹을 음식 장만을 위해 새벽부터 음식장만을 하고 계셨다. 나는 편도 6시간을 달려왔지만 피로를 달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인 나는 당연히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온종일 어머니를 도왔다. 동네에서 손 크기로 유명한 나의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명절음식을 나누셨다. 명절에 혼자 계진 노인분들, 자식이 찾지 않는 동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기에 어머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 시댁의 명절음식 규모는 거의 반찬가게 수준. 어머니는 식당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매년 김장도 500 포기나 하셔서 나누실 정도로 손이 크시다. 한여름도 아닌데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신 시어머니를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덩달아 나도 분주해진다.


금방 부쳐낸 따스한 전을 맛있다고 날름 주워 먹는 남편을 보고 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신다.


"우리 아들 잘 먹네, 동태전도 맛있어 먹어봐"


"그럴까. 진짜 맛있다"


"며늘아 접시 좀 가져와봐. 이거 예쁘게 담아서 아버지랑 식구들 가져다 드리렴"


"아냐, 엄마. 내가 가져갈게"


"아냐. 며느리가 예쁘게 담아봐"


남편이 선심 쓰듯이 전 정도는 가져간다 해도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신다. 말 잘 듣는 일꾼이 따로 있으니까. 며느리는 예쁘게 전을 담아 식구들에게 대령했다. 몇 시간째 기름냄새에 찌들었지만 아무도 전하나 먹어보란 소리가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웃는 소리가 들리고 티비에서는 명절 특집이 나온다. 낮부터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데 슬슬 거슬린다.


음식 마무리가 끝나가고 저녁상에 모든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종일 음식 냄새를 맡다 보니 식욕도 없었다. 대충 식사를 끝마치고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놓았다.


"어머, 며느리 벌써 설거지하게?"


"네?"


"천천히 하렴, 종일 일했는 데 얼마나 고단해. 엄마도 좀 쉬어야겠다. 고무장갑은 끼고 해. 고운 손 상한다"


나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빨리 밥 먹고 나도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설거지까지 내 몫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눈치 없는 내 남편도 슬슬 내 옆으로 다가온다.


"내가 할 께. 어서 좀 쉬어. 고생했어"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남편이 나를 살피자 어머니는 이내 사랑하는 아들을 부른다.


"네가 무슨 설거지야. 기름때 많아서 남자는 못해.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쉬어 아들"


나도 6시간 몸을 구기며, 운전하는 남편을 살뜰히 챙기며 왔건만 힘이 빠졌다. 종일 가족들을 위해 분주했는 데 산처럼 쌓인 그릇들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왜 엄마들이 화병이 생겼는지 알겠다. 물론 어머니는 평생 내가 시집오기 전까지 이 일을 혼자 하셨으니 얼마나 며느리를 써먹고 싶으셨을 까. 그렇게 어머니를 이해해 보고 설거지를 했다. 하나둘 식사를 마친 식구들이 남은 그릇들을 가져다주고 거실로 가버린다. 어머니까지 합세해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화목한 가족들을 등지고 혼자 싱크대에 서서 있노라니 순간 눈물이 울컥 났다. 그렇다고 굳이 평화로운 명절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냥 설거지란 행위에만 집중했다.


며느리가 돼서 첫 명절을 보내고 난 뒤 난 더 이상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명절에 더 바쁜 남편 덕분에 가끔 미리 시댁을 내려가지 못하기도 했다. 한 해는 어머님이나 형님(오빠의 누나)이 한 참 고생하신 뒤 방문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형님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져 혹독한 시집살이에 시달린 형님 입장에서는 명절을 제대로 준비 못하는 내가 얄미웠을 테다. 그게 동생의 직업 때문일지라도 말이다.


한 번은 또 홀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형님이 안타까원던 어머니는 명절 전날 근거리에 사는 형님을 미리 호출했다. 같이 전을 부쳐서 가져가면 좀 편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부터 어머니와 열심히 전을 부쳤다. 형님은 점심쯤 커다란 김치통을 가져오셨다. 형님이 오셔서 너무 반가웠다. 일손이 좀 늘었구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아직도 다 못했어? 점심 먹고 가져가려고 했는 데, 참."


'하아.' 형님은 생각이 좀 다르셨던 모양이다. 다 차려진 음식들을 기대하셨던 것 같다. 하필이면 나는 그때 심한 감기 몸살에 시달려 식은땀이 줄줄 났다. 그래도 며느리라고 몸 아픈 것도 참고 있었는 데 형님의 태도에 서운함이 몰려왔다. 점심 먹을 기운도 없어 끼니를 전 몇 개로 때우고 식구들이 밥을 먹는 사이 방에 누웠다. 피로가 몰린 탓에 잠시 선 잠에 들었다.


"뭐야,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올케 어디 갔어"


"감기 걸렸데. 좀 쉬라고 해. 새벽부터 힘들었어 쟤도"


"그럼 이 많은 걸 누가 해"


"뭐가 많아 너랑 나랑 둘이 금방이야"


"엄마는 맨날 이런 식이야. 왜 명절 전에 불러가지고. 딸 부리는 건 당연해 항상"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와 형님의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방에서 나왔다. 사실 잠에 들 생각도 없었다. 나머지 일도 할 생각이었는 데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형님, 죄송해요. 잠깐 쉰다는 게 잠이 들었나 봐요. 일을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딱 이십 분 정도 쉰 거 같은데.. 오해하신 거 같아요"


화가 난 형님은 내 말에 대꾸도 안 하셨다. 눈길조차 안 주면서 세 여자는 불편하게 전을 부쳤다. 마침 아버님이 들어오셨다.


"아빠, 나 너무 서운해. 나는 시댁도 챙겨야 하는 데 엄마 때문에 친정 와서도 일하고 이게 뭐야. 엄마는 맨날 나만 시켜 먹으려고 하고 정말 화나"


아버님이 들어오자 형님은 온갖 서운함을 표출하셨다.


감기기운 때문인지 화가 나서 인지 내 얼굴이 새 빨게 졌다. 시월드란 이런 것이구나. 그나마 며느리의 심정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던 형님도 시월드의 중심에 있었구나 싶었다. 감기몸살에 온몸이 아팠건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내려와 열심히 며느리 도리를 해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며느리는 명절에 아프면 쉴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몇 해의 명절을 보내면서 느낀 건 며느리는 손님도 가족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손님처럼 대접해야 할 존재도 아니고 가족처럼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아닌 것이다. 어중간한 입지를 지닌 며느리는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물론 일 년에 몇 번 아닌 명절에 전을 부치고 집안일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다. 나는 심지어 명절이 아니어도 전을 부칠 정도로 전 마니아고, 음식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명절에 힘들다고 느끼는 건 며느리의 고단함을 당연시하는 가족들의 '태도'였다. 시댁에서 며느리는 사실상 가장 약자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구도는 실제로 존재하고, 애매한 차별이 난무한다.


아직도 뿌리 깊은 유교사상은 우리 가족 사회에 뿌리 깊다. 남자가 해야 할 일과 여자가 해야 할 일에 구분이 분명하게 있다. 아무리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져도 명절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워킹맘도 명절이 고단하고 전업주부도 명절이 부담스러운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항상 남자보다 여자가 더 힘들고 고생한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남자들도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다 쉬는 날이 되면 보상심리가 있을 것이다. 명절에 자주 못 보던 가족과 친구를 만나 쉬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즐거워야 할 명절이 누군가에게 괴로움이 라면 분명 문제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여자들이 그냥 무작정 시댁을 어려워하고 명절을 이유 없이 싫어하진 않을 것 아닌가. 나도 결혼 전에는 명절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즐겨왔다. 가족 중 누군가 힘들어하고 있다면 살펴보는 인정을 기대하고 싶은 거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즐거울 수 있는 명절은 분명 변화해야 한다. 서로가 조금씩 배려하고 이해해보려 한다면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며느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귀한 사람이지 않는 가. 귀하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적으로 명절음식은 먹을 만큼만, 설거지는 남자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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