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끝에서는 준비된 마무리를 선물하자
대부분의 경험은 참여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황동규 시인은 사랑이 그치는 순간을 기다리며,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했다.(즐거운 편지 中) 기획자인 우리도, 경험의 제공자인 당신도 끝맺음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앞서, 첫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두효과라는 기억의 원리를 언급한 적이 있다.(관련 글: 초장을 잘 쓰는 기획자)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또 다른 강력한 기억의 효과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뇌의 작동원리는 최신효과(最新效果, recency effect)이다. 가장 최근의 것이 가장 기억하기 쉽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건 과정이 있다면, 인간은 가장 처음과 가장 끝 부분을 제일 쉽게 기억한다.
역시나 복잡한 심화과정까지 알 필요는 없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일련의 사건 과정'이라는 표현이다. 참여자가 경험이 끝났다고 느끼는 지점까지가 한 묶음으로 묶인다. 그 지점까지가 'OO한 경험'이라는 하나의 조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각에서 처음과 끝이 가장 쉽게 기억된다. 그러니 처음만큼 끝맺음도 중요하다.
끝맺음을 어떻게 하는가는 일련의 경험 조각이 어떻게 기억되게 할지를 결정한다. 행복하기만 했던 연애일지라도 잠수 이별로 끝이 맺어졌다면, 최악의 경험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한다. 기획자에게는 무시무시한 일이다. 애써 준비한 경험의 과정 내내 참여자가 충분히 즐거웠음에도, 단 한순간의 실수로 망쳐버릴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매너 있고 세련된 이별이더라도, 경험 자체가 좋지 못했다면 아름답게 기억되기는 어렵다.
무조건 붙잡는 것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 쿨하게 놓아주는 것 역시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과 같이, 제공하는 경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험의 성격에 따라 참여자의 성향 역시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질척거리는 이별이 질색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은 잡아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은 어디에 속하는가?
- 반복되거나 유지되는 경험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의 성격이, 참여자가 반복적으로 참여해야 하거나 유지해야 하는 경우일 수 있다. 공간을 운영하거나,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요즘 세대에게는 쿠팡 프레시, 마켓 컬리가 더 친숙하겠지만, 여전히 마트에 방문해서 직접 물건을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고객층이 두텁다. 그들에게는 저 가사에 자동 재생되는 멜로디가 있다. 뒷부분의 가사는 "다음에 또 만나요"이다. 이 노래는 놀이공원, 마트, 백화점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사용되었다. 핵심은 '또 만나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서비스는 일회성이 아니며, 언제든 당신이 원하면 다시 만날 의사가 있고, 언제든 준비되어있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가사만 봐도 머릿속에 자동 재생될 정도로 귀에 때려 박는 것이다.
당신이 파는 경험이 이와 같은 성격이라면, 경험의 끝자락에서 확실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다시, 혹은 계속해서 당신의 경험을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가격 경쟁력이 될 수도, 뛰어난 경험의 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강력한 것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감성과 친밀감이 될 수도 있다.
-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험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이 일회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위와 같은 처사는 무의미할 수 있다. 당신이 이벤트, 사용기간이 긴 가구와 같은 상품, 브랜디드 콘텐츠와 관련된 경험을 팔고 있다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 참여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재구매의사가 아니라 기억과 정서다.
앞서 설정했던 경험의 기저선에 따라, 어떤 기억과 어떤 정서를 남겨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잠시 복습을 하자면, 참여자는 경험의 모든 과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자극을 원하지만 지나친 자극은 싫어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위에서 곰돌이가 사용한 전략인 감성과 친밀감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완벽하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험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계속해서 브랜드를 운영해나가거나, 축제 이벤트의 경우 내년을 기약하기도 한다. 이 경우 참여자와의 다음 접점까지의 거리가 시간적으로 멀리 있다. 따라서 그 거리를 좁혀주거나, 기억하기 쉽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애플이 사용하던 아이폰을 가져오면 다른 애플 기기를 살 수 있도록 포인트로 환급해주는 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스타벅스는 매장 방문 시에 별을 채워주며 다음 방문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1회성으로 끝나야 했을 참여자의 매장 이용 경험을 별을 모으는 과정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연인의 연애 경험과 이별 과정을 빗대어 경험 디자인의 끝맺음에 대해 적어내려 갔다. 그러나 연인의 이별과 경험의 이별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경험과의 이별에 재회란 없다.
제1회 신촌물총축제에 참여한 참여자에게, 다음 해 여름의 제2회 신촌물총축제는 재회가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두 번째 경험이다. 반복되는 경험일수록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2회 차 축제는 작년보다 더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3회 차에도 참여할 마음이 생긴다.
물론, 다른 전략도 시도해볼 수 있다. 매번의 경험을 아주 동일하게 제공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이러한 전략을 아주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 새롭거나 대단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스타벅스를 찾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어느 매장을 가도 어느 수준 이상 깨끗하고, 콘센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어느 수준 이상의 커피맛을 보장한다. '안전'하기 때문에 스타벅스를 찾게 된다.
이처럼,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에 따라 솔루션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이별할 때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쪽은 해줄 만큼 다 해준 쪽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고 매 순간 진심을 다 한 사람은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다. 오히려 못해준 게 많이 떠오르는 사람일수록 매달리게 된다. 참여자가 매달리는 경험을 만들고 싶다면, 매 순간 진심을 다하자.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