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만능간장이란 없다.

경험의 사이사이를 채우는 법

by 기획자 에딧쓴

당신이 파는 것이 무엇이든, 사람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팔고 있다면 당신은 경험을 파는 것이다. 상품, 서비스, 이벤트, 공간, 브랜드 모두 경험을 통해 사람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우리는 효과적으로 경험을 설계하기 위해 심리학의 기초를 익히고, 참여자를 초대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야 드디어 본격적으로 경험을 제공할 차례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의 몸에 맞는 옷은 없다. 모든 사람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은 결국 누군가에게는 너무 커서 불편할 것이다. 특정 사례가 아닌 일반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너무 추상적이거나 뻔한 내용이 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기획에서 공통적으로 고려할만한 세 가지를 추려보았다.




1. 간지를 세워라


간지(間紙)는 얇은 종이를 힘 있게 받쳐주거나, 인쇄된 종이끼리 붙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요즘은 그 의미가 확대되어, 프레젠테이션이 다른 내용으로 바뀔 때 구간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중간 지면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경험디자인에도 적절한 간지의 사용이 필요하다. 연속된 과정의 경험을 제공하다 보면 구획을 나누어줄 필요가 생긴다. 경험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면 자칫 지루해지거나 참여자가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전시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단순히 예쁜 사진이 나열된 공간이 아니다. 참여자(관람객)는 비행기 티켓처럼 생긴 표를 받고 전시 공간으로 들어간다. 입구에는 "THIS IS AN ADVENTURE"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팸플릿에 쓰여있는 입장 후 첫 공간 역시 'WELCOME ADVENTURERS'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 모험의 동력을 얻고, 더 먼 곳으로 여행하기 위한 이동수단을 고른다.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하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도시를 여행한다. 많은 도시들을 둘러본 뒤에는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다. 공간 이름은 'CHECK IN, PLEASE'이다. 해당 공간은 실제 호텔에 온 듯 한 인포메이션 데스크, 붉은 카펫 바닥을 사용한다. 체크인 이후에는 풀장에서 쉬기도 하고, 망원경으로 더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다.


웨스 앤더슨 展의 경험은 참여자가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리고 공간의 컨셉이 변하는 지점에서는 커튼을 열고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거나, 조명과 바닥, 벽면 전체를 바꾸어 다음 장으로 넘어왔음을 알린다. 이러한 장치들이 간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자는 하나의 큰 주제 안에서 11가지의 존으로 구성된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한 가지 경험이 아니라 흐름이 있는 열 한 가지의 경험이 되는 것이다.




2. 터치포인트(접점)의 감수성


터치포인트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한 가지는 참여자와 만나는 지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참여자를 울리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 참여자와 만나는 지점

경험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참여자와 만나게 되는 지점들이 발생한다. 앞선 내용을 빌려오자면, 접점은 달의 앞면에 해당하고, 텔링(전달)이 이루어지는 채널에 해당한다. 웨스 앤더슨 전의 경우 참여자가 전시를 알게 되는 지점, 티켓팅이 이루어지는 지점, 전시에 입장하여 관람하는 과정, 퇴장하는 지점 등을 터치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점들 중 위의 간지와 유사한 부분들이 생길 수 있으나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웨스 앤더슨 전의 경우 티켓팅이 이루어지는 접점에서 비행기 티켓과 같이 디자인된 종이를 사용함으로써 여행이라는 지향점을 참여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 참여자를 울리는 지점

참여자를 엉엉 울게 만드는 것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참여자가 감동을 받거나, 인상 깊게 느끼거나, 흥미를 유발하거나, 말 그대로 참여자를 '건드리는' 지점이다. 이 부분은 기획자가 의도하여 구성하기도 하지만 참여자 스스로가 결정하기도 한다. 어떤 참여자가 어떤 부분에서 감명을 받을지는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은 '참여자'가 되는 것이고, 함께 경험을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의미의 접점은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으나, 기획자라면 최대한 많은 가능성들을 예상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위 두 접점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참여자에게 공감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 나 스스로 참여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참여자라면 이것을 어떻게 느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자.




3. 보수적인 관점


극한의 감수성을 추구하다 보면 대개 아래와 같은 피드백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그렇다면 성공적으로 참여자들의 후보군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도 좋다. 인간은 보통 자신 이외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피곤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작동원리상 '불가능'하다. 두 다리가 멀쩡한 비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편함을 알 수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이 비윤리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출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코 당연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다고 하는 것에는 어폐가 없는 무관심이다.


그러나 당신이 제공하는 경험의 참여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기획자라면 리스크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기획하고 리스크를 검토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시키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그때 후보에서 지우는 것이다. 영상매체를 기획함에 있어 시각장애인은 배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화면해설방송은 '우리 콘텐츠에 참여하는 사람이, 앞을 볼 수 없다면?'이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걷기 축제'에 걸을 수 없는 사람은 참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201910155023371.jpg 누구나 경험의 참여자가 될 수 있다.




이전 글이 경험의 초장을 기획하는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경험의 사이사이, 간장(場)에 대한 글이 되었다. 글의 초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모든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론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에게 만능간장은 존재할 수 없다. 기획자라면 자신이 하는 요리에 맞춰, 자신이 초대할 손님에 맞춰 그때그때 다른 조미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요리에도 대원칙은 존재하는 법이다.


어려운 순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기초와 기본이다. 만능간장에 기대기만 해서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어렵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기획자가 된 다음에야, 만능간장 역시 진정으로 빛을 발하도록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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