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맛을 내는 공간

인간중심 경험디자인(HX) 유형별 특징: 공간 기획 편

by 기획자 에딧쓴

집밥의 표면적 의미는 '집에서 먹는 밥'이다. 혹은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라는 뜻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집밥이라는 단어에는 분명 home food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집에서 먹는 모든 밥을 집밥이라고 부르기는 어쩐지 개운치 못하다. 1인 가구일 경우 특히 그렇다. '어머니의 집밥'이라면 어떨까? 조금 더 집밥스러운 위치에 자리한 느낌이다. 집밥은 단순히 음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관용표현으로 봐야 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포근함이 내포되어 있다. 타지에 나가 고생하는 우리 딸, 우리 아들 밥이라도 든든히 먹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공간을 기획할 때는 집밥을 떠올려보자.




공간은 앞선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보다 피부에 와닿는 경험이다. 오감을 모두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 빵 굽는 냄새, 흥겨운 캐럴, 달콤한 초콜릿, 푹신한 소파. 연말에 베이커리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오감만족이다. 이에 따라 기획 단계에서도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 비주얼 연출을 위한 소품, 룸 스프레이나 디퓨져, 배경음악, 식음료, 가구나 사무용품 모두 하나하나 결정이 필요하다. 대신 그만큼 다채로운 기획이 가능하다. 모든 공간 기획이 오감을 다 자극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참여자는 공간에서 오감을 다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초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만 생각해서는 어딘가 부족하다. 훌륭한 조미료와 메뉴 선정이 집밥의 전부가 아닌 것과 같다. 공간이 주는 다른 여러 감각들이 있다. 격리감, 개방감, 포근함.. 이러한 감각을 종합적으로는 분위기라고 부를 수 있다.


공간이 줄 수 있는 감각의 집합체인 분위기는, 참여자의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참고 글: 오징어 게임을 섬에서 진행해야 했던 이유)




공간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기획자가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요소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회의를 하고 있는 무리 등은 자연스럽게 공간의 일부로 녹아들기 때문이다. 공간의 일부로 녹아든 타인은 각각의 참여자 경험의 일부로 편입된다.


각각의 참여자는 모두 경험을 만들어가는 주체이므로, 이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시도가 모두의 경험을 망칠 수 있다.

0a0020325ff4c254b5ac2b3f3e35a3f2.jpg 과한 통제 시도로 화제가 된 카페. 베스트 댓글은 "노 방문"이었다.




공간은 인터랙티브나 실시간 변화가 어려운 기획에 속한다. 콘텐츠와 같이, 한 번 발행하고 나면 그 상태 그대로 여러 사람을 거쳐가게 된다. 그러나 콘텐츠와 달리 참여자들의 관여도가 높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가오픈'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실험을 시도하는 가게들도 있다. 가오픈 기간에 미숙한 부분들은 실제 오픈(Grand Open!!이라고 써붙인) 시에는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공개한다.


가장 관여도가 높은 공간 중 하나는 '집'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집을 '살기 위해 필요한 공간' 이상으로 인식한다. 오늘의 집, 집 꾸미기와 같은 주거 경험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집에 대한 인식이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수록 집이라는 공간은 개인의 개성을 점점 더 많이 반영하게 될 것이다.




'집밥'의 '집'은 바로 윗 문단의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절대적인 역할은 '어머니'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보호자의 존재다.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고 어디서든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 그러한 존재가 같은 공간의 참여자로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의 분위기가 완성된다. 집밥이라는 단어만 기억해도 이번 글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집밥의 따끈함을 만드는 것은 마음이다. 진정성, 진심, 무엇으로 부를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당신의 공간에서 마음을 느끼고 위로를 받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성공적인 기획이나 마케팅은 없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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