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여러분은 충주시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충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가본 적도, 충주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충주를 잘 모르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충주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주?'라고 되물을 정도이니까요.
충주는 잘 모르지만 충주에 대해 알게 된 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충주시에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이 있다는 것인데요. 김선태 주무관은 충주시 유튜브의 개설자이자 운영자입니다. 섭외부터 출연, 기획, 편집, 운영까지 모든 것을 혼자 담당하고 있죠. 현재 충주시의 유튜브 구독자는 약 60만 명으로, 서울시 유튜브 구독자의 약 3배에 달합니다. 충주시 유튜브는 어떻게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의 유튜브 채널보다 더 많은 구독자를 보유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충주시 유튜브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역을 홍보하는 유튜브 혹은 공무원이 운영하는 유튜브라고 하면, '재미'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죠. 뻔한 스토리, 딱딱한 진행... 결국 '높으신 분'에 대한 자랑이나 관광지에 많이 놀러와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한 유튜브 영상 중에는 심지어 조회수가 '1'도 찍히지 않은 영상도 있었다고 합니다. 즉, 영상 편집자조차 영상을 업로드하기만 하고 보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처음 충주시 유튜브 운영 업무를 맡았을 때, 김선태 주무관은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지역 홍보 유튜브 채널과는 반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무결재' 시스템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포스터를 만들어 바로 위 상관에게 보고 하면 '글씨가 작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씨를 키워 그 위 상관에게 보고하면 또 '글씨가 너무 크다'고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들이 뒤죽박죽 얽히다보면 콘텐츠 제작자의 의도는 사라지고, 결국 '그 누구의 의견도 아닌 것'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충주시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한 김선태 주무관은 '무결재'로 콘텐츠를 업로드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결과는 이미 위에서 공개했듯이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공무원답지 않은(?) 김선태 주무관의 유머러스함과 최신 트렌드를 접목한 콘텐츠로 충주시 유튜브는 대한민국 공공기관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또, 충주시 유튜브뿐만 아니라 tvN <유퀴즈 온더 블록>이나 286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피식대학>에 출연하는 등 다방면으로 홍보 효과가 커져 '충주시'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죠.
홍보 담당자 및 마케터로 일하면서 저는 비슷한 고민을 해왔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할 콘텐츠를 한달 주기로 미리 계획하여 보고하는 것'은 SNS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업무 방식입니다. 윗분들은 월별 계획이 미리 나와 있어야 그에 맞는 예산을 편성하고, 한달 동안 직원들이 그저 놀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마음이 놓이겠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는 SNS 콘텐츠를 월별계획표로 만들어 보고를 해야 한다면, 직원들은 '망한다'는 결과를 알고도 뻔한 스토리의 콘텐츠를 기획하며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것 좀 없어?"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막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니 여러 가지 걱정거리들이 생깁니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하면 안전할 텐데, 괜히 시끄러운 논란이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 다시 야금야금 기존 방식대로 되돌아가죠. 이것은 '본질을 잃은 업무 방식'입니다. SNS 홍보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지역, 우리 회사, 우리 서비스를 알리기 위함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신 트렌드에 맞춘 우리만의 색깔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SNS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전형적인 채널입니다. 사공이 많을수록 특별한 색깔은 사라지니까요.
충주시 유튜브 영상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김선태 주무관은 그저 웃기는 사람이 아닌 충주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겸비한 매우 유능한 인재입니다. 조길형 충주 시장이 '결재 프리패스'를 승인한 것은, 아마도 김선태 주무관의 그러한 능력을 이미 충분히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결재가 끝났다면, '콘텐츠'에 대한 결재는 어느 정도 프리패스 하는 것이 SNS 홍보의 본질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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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