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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l 20. 2019

먹지 못한 김치찌개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아침

미역국 먹을래, 김치찌개 먹을래?

"미역국 먹을래, 김치찌개 먹을래?"


아침을 먹기 전, 엄마는 두 가지의 국물 중 어떤 국물을 먹을 거냐고 묻는다. 나의 식탁에선 흔히 있었던 일이므로, 어렸을 땐 아침마다 두 가지 국물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아침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야말로 '왕 대접'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 아침은 빵이나 과일주스로 간단하게 먹거나 거르는 게 일반적이었고, 챙겨먹더라도 국까지 준비해서 먹는 집은 흔하지 않았다.


국 종류가 두 가지나 준비되어 있다면 반찬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엄마는 늘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식탁을 채웠다. 한 줄기 먹을까 말까한 고사리 나물에, 취나물에, 이것저것 꺼내는 엄마에게 "아, 그만!"이라고 외쳤다. 언젠가부터 식탁을 꽉 채우는 반찬들을 보면 밥을 먹기도 전에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그저 잘 안 먹는 막내딸이 한 끼라도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 보고 싶으셨을 게다.


아무리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해도 다양한 반찬에 밥을 먹는 것이 싫을 리가 있을까. 나도 나이를 먹고나니 반찬의 가짓수가 엄마의 고생으로 느껴졌을 뿐이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까지 할아버지를 모셨다. 그러다보니 식탁 위엔 항상 국이 있어야 했고, 가족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다보니 해야 하는 반찬의 가짓수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아침엔 찌개류보다는 슴슴한 국 종류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국물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행복이었고, 소세지나 계란 후라이 하나쯤은 있어야 밥 한 공기를 먹는 나를 위해 엄마는 단 한 번도 아침상을 대충 떼우고 넘어간 적이 없었다.


얼마 전, 두 딸의 엄마가 된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가 닭볶음탕을 뚝딱 만들어 오이냉국과 함께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 때문에 입맛이 떨어진 차에 오랜만에 꾹꾹 눌러담은 밥 한 공기를 해치우고 호랑이 기운을 얻었다. 엄마가 해주는 상을 받기만 했던 친구가, 이제 가족들의 상을 차리는 엄마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오늘 저녁은 또 어떤 반찬을 만들지 고민하는 친구의 모습 위로, "오늘은 뭐 해먹지"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가족들은 별 생각없이 차려진 대로 먹는 식탁 위 음식들이 알고 보면 엄마의 거듭된 고민의 결과였고, 어제 먹었던 반찬은 지겹지 않을까, 한 가지라도 더 새로운 반찬을 준비하려는 애씀이었던 것이다.


식탁 위가 무거워지면 무거워질수록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된 딸은 자꾸만 속상함에 짜증이 밀려온다. 냉장고가 두둑해야 엄마의 마음도 두둑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나쁜 딸은 자꾸만 미안함에 신경질을 부린다. 엄마가 조금씩 식탁의 무게를 줄이고 엄마의 행복에 더 많은 무게를 싣기를 바란다. 가족의 건강이 엄마의 행복이지만 엄마의 행복이 가족의 건강이기도 하니까. 맛있게 먹은 미역국보다 먹지 못한 김치찌개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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